그 남자의 버킷 리스트

中年 中心

by 허니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코미디 드라마 영화다. 암 말기 환자들인 두 주인공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비롯한 그들만의 소원 목록을 작성하여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2007년에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었고 ‘버킷 리스트’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팅 룸에서 만난 고객에게 갑자기 “당신 인생이 의미가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퇴직한 지 4개월 차, 은행 지점장 출신인 염 부장은 “어렵네요”라고 답을 한다. 아니 피하려는 듯하다. 커피 한 모금 마시면서 염 부장은 자세를 고쳐 앉는다. “혹 젊었을 때는 무얼 하고 싶었어요?” 늘 고객들에게 물어보는 나의 단골 메뉴다. 고객들은 한결같이 “그게 이제 무슨 소용이 있나요?” 반문한다. 사실 소용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내적 욕구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인생에는 나름의 소원과 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늘은 이런 일 내일은 저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또 우리가 왜 어떤 때에 죽어야 하는지를 안다면 우리의 인생은 아주 팍팍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한시도 편안하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는 각자 고유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구체화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이 좋은 삶이든 나쁜 삶이든 간에 우리가 선택할 자유는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자신만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년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본다. 아주 특별한 시간을 갖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람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삶의 목표를 발견하는 것이다. 특히 중년기에 접어든 남성의 경우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전반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거나 삶의 전체적인 균형을 잡고 새로운 삶의 목표, 계획 등은 재 정립하는 시간을 갖는다.


보통 중년기 남성은 젊은 시절의 삶의 목표와 실제로 자신이 이루어 낸 결과물을 두고 나름대로의 평가를 통하여 이후 자신의 삶의 목표 재조정이나 미래 가능성을 점검하게 된다. 그동안의 삶에 대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평가를 통해 새로운 삶의 목적과 계획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사회의 여러 시선들과 주변의 상황 때문에 ‘자신의 것’을 하지 못했거나 외면해버렸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된다. 중년에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향에 대한 심각한 물음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이르면 30대 혹은 40대 즈음에는 자신이 추구했던 물질적 만족이나 사회적 성공 등의 목표들을 이루면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 아닌가 싶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위기를 겪는 것이 보통이다.


과제로 내주었던 염 부장의 버킷 리스트’를 공개한다.

스위스 여행, 스페인 여행, 캐나다 여행(친구 만나기), 독도 여행, 백령도 여행, 사진 촬영 배우기, 서예 배우기, 그림 배우기(데생, 수채화), 등산(지리산 종주), 요리 배우기(안주), 제과/제빵 배우기, 식스팩 만들기, 다이어트 성공, 수영 배우기, 검도 배우기, 신춘문예 당선, 오디오 장만, 자전거 타고 춘천 가기, 악기 배우기(기타), 좋아하는 노래 핸드폰에 담기, 좋아하는 노래 3곡 배우기, 얼굴 점 빼기, 노후 자금 20억 모으기, 새로운 국가 여행하기(미국, 대만, 일본, 러시아, 싱가포르, 중국, 멕시코), 맛집 순례, 책 쓰기, 가족 도와주기, 드론 장만하기, 자녀들 집 장만 도와주기.


염 부장은 이를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같은 소원이라 말했다. 정말 요원(遙遠)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은퇴를 앞두고 있는 그는 늦었지만 하나하나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이것을 실천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소원 없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아니 소원이 없다는 것은 불행이다. 왜냐하면 바라는 것 없이 산다는 것은 현재 삶의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원은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엔진과 같다. 소원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불명확한 상태이거나 행동이 명료하지 못한 상황일 수 있다. 소원이 크거나 많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자신이 가진 소원의 강도에 따라 일은 결정된다. 소원은 항상 새롭게 심사숙고해서 얻어내는 결정체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결과도 나오질 않는다. 문제가 없는데 어떻게 답이 나오는가?


그러면 자신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고 난 뒤에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와야 하는가?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그렇지만 현실의 삶에서 이러한 인생의 정점이, 다시 말해 되돌아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최고점에 이르는 지점이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소원은 높음과 젊음도 없는 무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최고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없다. 다만 어느 지점만 있을 뿐 ’ 인생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그 지점은 새로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한정된 리스트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전의 것은 과거이고 또 새로운 삶의 목표를 새로운 경험에 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몫인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 행복이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자신에 대한 노력과 끊임없는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계속해서 소원을 가져야 한다. 문득 염 부장의 ‘지점’이 궁금해졌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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