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꿈

中年 中心

by 허니


윤 이사의 젊었을 때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경상도의 어느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지낸 영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계절마다의 다양한 풍경이 50줄이 넘은 지금에도 어른거린다.


서울에서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취업이 잘된다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국내 기업에 채용되었다. 그 당시 윤 이사가 다녔던 회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그는 정작 시큰둥하였다.


‘시인이 되리라’는 그의 꿈은 어쩌면 중학교 때 독서반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로부터 ‘책벌레’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그는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읽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특별활동 시간에도 그는 독후감을 수시로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모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독후감이 학교 신문에 게재되면서 그는 교내의 유명인사가 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가 상을 타면서 점차 그는 ‘글쟁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 교지에 매년 글을 싣고 친구들과 문학모임을 결성하여 조그만 동인지 형식의 글집을 제작하기도 했다. 물론 전국 규모의 백일장에 나가 상도 타고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시인과 작가 등을 보기도 했고 그들에게서 격려의 말도 들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대학에서 주최한 백일장에서 차상을 하였다. 대학 입학 특전이 주어졌던 그 기회를 어찌어찌하여 접고 말았던 그는 지금도 내내 그 인생의 ‘접점(接點)’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은 재미가 없었다. 그저 그러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회사에 입사하여 보통 직장인으로 생활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시 낭송회’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고, 몇 번 시인들의 시 낭송 현장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신선한 공기, 울림 있는 낭송, 시를 읊는 시인의 눈길이 집에 돌아와서도 잊히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렸던 시 낭송회에서 마침 전국 시 낭송 경연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윤 이사는 자못 흥분되었단다. 회사 업무보다도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당시 신입이던 시절이라 회사 업무는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지만 자신이 책임지고 해 나갈 ‘그 무엇’은 없었는데 이것은 오롯이 ‘나’를 부르는 느낌이었다는 것이 윤 이사의 추억담이다. 윤 이사는 자신이 오래전에 썼던 글을 다시 다듬어 주최 측에 발송하였다. 1주일이 되어서야 결과가 나왔다. 작품이 선정되었으니 그 작품을 암송해서 경연일에 발표하란다. 읽고 또 읽고, 또 써보고… 외우고 외웠다.


열흘이 흐른 후 경연이 펼쳐지는 날, 윤 이사는 불현듯이 자신의 글을 엽서에 타자로 치고는 대략 평소 보아왔던 청중 수만큼 복사해서 엽서에 붙이고는 자신의 발표 순서에 앞서 나누어 주었다. 이는 자신의 글이 낭송되는 순간 까만 적막 속으로 흩어진다는 아쉬움이 있었고, 청중에게 나름 자신의 글을 보여준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 이사는 그날 2 등상을 받았단다. 주최 측의 시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입상자들과는 계속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는 헤어졌다. 정기적으로 다녔던 낭송회는 회사 출장이다 해서 가끔씩 나가면서도 낭송회 입상자 동인들과는 교류도 계속하였다. 해마다 10월이면 유독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신춘문예’라는 걸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또 썼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또 다른 시 낭송회에서 전국 대회를 한다고 해서 참가했는데 여기서도 2등을 하면서 점차 윤 이사 이름이 주변에 알려지고 몇몇 중앙지 문화면에도 소개되었다. 본격적인 '시 낭송회 동인모임'이 결성되면서 공공 도서관과 대학 축제 등에 초청되는 등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명동에 있던 카페에서 열렸던 시인들의 또 다른 시 낭송회에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백일장 심사위원이었던 여류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 그리고는 ‘끝’이었다.


윤 이사는 지금도 가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늦도록 잠이 없다. 아니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혼자 밤을 밝힌다. 젊은 시절 어느 순간부터 일정 시점까지의 시간이 단절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주변 상황이 변한 것에 놀라워하면서도 한편 자신이 초라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컨트롤하지 못했던 시간, 바쁨으로 점철되었던 회사 생활이 자신을 묶어버렸다는 생각에 회한이 밀려온다. 이제는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또 다른 시간이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허망함도 있다. 정말 윤 이사의 ‘시인의 꿈’은 박제된 걸까? 그의 서가에는 그때의 시 낭송 경연대회 출신 시인의 시집이 있다. “뭐 하고 있어요?” 물어보는 듯하단다. 윤 이사의 올 가을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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