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가을이다. 풍성함에 부족함이 없고, 세상 모든 게 결실을 맺는 계절. 그리고 청춘 남녀의 결혼의 계절이다. 지난 주일 성당에서 있었던 혼배성사에 참석하여 성가대원 일원으로 축하의 성가를 부르면서 새삼 ‘결혼’이란 걸 생각해 봤다.
어느덧 아내와 결혼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에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아들 녀석이 태어나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었던 일, 잔병치레가 많았던 손주 녀석을 뒷바라지하며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 대신 집안 살림을 맡아해 주신 어머니의 마음과 정성, 아들 녀석이 커가면서 재롱을 떨며 점차 사내아이로 성장해 나가는 기간, 아내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시간들 모두가 하나의 기록이다.
몇 년 전 아들 녀석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 가운데 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친구의 결혼에 아들 녀석은 결혼식 사회를 보며 한몫했다. 나 역시 결혼식에 초대받아 아들 녀석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도 불현듯 시간이 점점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젊음의 시간에 우리의 시간이 얹혀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들 녀석 친구들과는 오랜 시간 성장과정을 보아왔고 대화를 많이 한 탓인지 이들의 결혼이 각별하고 내게도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벌써 10여 년이 지난 일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창 할 때였다. 어느 봄날 졸업생 남녀가 찾아와서는 결혼 주례를 부탁했다. 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직장에 잘 다니고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났다. 이들은 내 전공 강의를 들으면서 같은 발표 그룹으로 편성되어 수업 준비와 발표도 같이 하면서 서로를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자기네들 ‘눈’을 맞추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선생님이 결혼식의 증인이 되어 달라는 거다. 처음에는 나의 나이를 핑계로 사양했다. 하지만 그들의 간곡한 부탁에 주례를 서 주겠노라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몇 주일 후 이들의 결혼식장에서 강의시간에 만났던 졸업생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고 모두들 직장에서 제 역할을 하는 듯하여 흐뭇함도 느꼈다. 순서에 따라 주례사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사실 주례를 서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지만 이들에게 딱히 결혼의 의미나 사랑에 대한 얘기는 애초부터 진부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식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제안을 했다.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 생각으로 지금 제 이야기를 들을 겨를이 있겠나 싶어 만세삼창으로 대신하겠다”라고 양해를 구했던 것이다. “신랑 *** 독립만세, 신부*** 독립만세, 혼주님들 독립만세, 여기 계신 우리 모두 만만세” 그야말로 1분도 되지 않은 주례사는 대히트였다. 모두들 놀랐단다. 결혼식 이후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그 졸업생들은 지금도 가끔씩 그 ‘사건’을 말하곤 한다.
며칠 전 카톡으로 받은 친구 딸아이의 결혼 청첩장을 다시 꺼내 본다. 친구와의 오랜 만남과 그 많은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자식들의 결혼 이야기 저 너머로 가고 있는 우리들의 시간은 야속하게도 중년 끝자락을 넘어섰다. 유난히 가을을 타는 내게 허허로움이 밀려온다. “너 지금 잘 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