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면에는 만리장성이 다른 면에는 나무 사이에 팬더 한 마리가 숨어있는 러시아 화가 리우바(LIUBA)의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에코백 안에는 노트북, 교과서, 학습지, 펜 분필, 필기도구가 들어있다. 한쪽 어깨에는 에코백을 매고 한 손에는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다시 돌아간 직장에서 나의 모습이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직장생활을 했을 때에 비해 건강상태가 안 좋아져 복직을 고민했다. 공백이 1,2년도 아니라 조직사회로 돌아가 버틸 수 있을까 겁도 나고 자신이 없어 휴직 상태에서 사직서를 쓰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 지인이 북경에서 아무것도 안 할 때는 돌아갈 직장이 있는 여유로움이었는데 막상 돌아가 그만두면 소속감도 없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깊은 우울증이 올 거라며 일단 부딪쳐보라 했다. 깊은 고민 끝에 용기를 얻어 복직을 하였다.
교육현장도 바뀌었고 아이들은 더 많이 변해있었다.
근육계 신경질환이 있어 빨리 걷지 못한다. 쉬는 시간 일찍 나서서 수업종이 치기 전에 교실로 들어간다. 친구들과 얘기하던 아이들이 놀란다. 종이 칠 때까지 자유롭게 보내라고 얘기하고 에코백 안에 있던 노트북을 미리 설치한다. 수업 시작종이 친다. 미리 들어와 준비를 해서 몇 분의 시간 여유가 있다.
본 수업 전 <오늘의 중국어>를 시작한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짧고 쉬운 중국어 표현을 소개해본다.
중국어에 낯선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7월 초 아이들과 만난 첫 수업에서 6년간 중국 베이징에서 지내고 돌아왔다고 나를 소개하며 '중국 하면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였다. 중국어를 소개하며 언어는 계속 사용해야 느는 것이니 틀리더라도 직접 써보기를 권했다.
점심시간, 급식을 먹는 식당에서 만난 아이들은 나를 보고 뭔가를 얘기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수업시간 성실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나에게 "早上好(자오샹하오, 중국의 아침인사, Good Morning)"라고 인사했다. 그때는 점심시간이라 웃었는데 그 뒤로도 나를 보면 '早上好'라고 꾸준히 인사한다.
중국을 떠나오면 중국어를 쓸 일이 없으니 빛의 속도로 잊혀질거라 생각했다. 나의 전공은 중국어가 아니다. 그러함에도 아이들은 나의 '오늘의 중국어'를 좋아한다. 나와의 첫 시간 중국은 '코로나 발원국'이라고 혐오하듯 얘기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중국에 관심을 보인다. 나의 에코백에 그려져 있고 내가 찍은 사진으로도 소개한 만리장성에 가보고 중국의 조식과 마라탕을 먹으러 중국에 가보고 싶다 한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가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중국에 있지 않지만 정확한 발음의 중국어 표현을 구사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Y○○의 중국어 연수를 듣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나는 만리장성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오늘의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과학선생님이다. 다른 곳에 에코백을 놔두고 와도 나의가방인 것을 알고 가져와준다.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외국어를 소개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나는 실제 중국에서 많이 썼던 표현들 위주로 소개한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라 중국어로 욕을 나타내는 표현을 묻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배우인 서○○은 어릴 적 부모님과 영국에 가서 살았는데 영국 학교의 학생들이 그녀에게 한글로 욕을 가르쳐달라 했다 한다. 서○○은 웃으며 한글 욕이라며 '사랑해'를 소개해주었고 그 뒤 영국 학생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사랑해'라고 말했다 한다.
중국어 욕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나도 욕이라며 가르쳐주었다.
"我爱你(워아이니, 나는 너를 사랑해)"
진짜 뜻도 알려주었다.
내가 지나갈 때 '我爱你'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본래의 뜻을 모르고 진짜 중국어 욕인 줄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이 아이들은 중국어로 말하고 싶어 한다. 오늘 오후 어떤 아이는 우리 반 교실 칠판을 한 번 봐달라 했다. 가보니 칠판 위쪽 한 귀퉁이에 '오성홍기(빨간 중국 국기)'가 붙여져 있었다. 왜 중국의 국기를 붙였냐 물어보니 중국에 관심이 많아졌다한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뿌듯함'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회전문을 빠져나오며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사직서를 낼까 고민하며 다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내가 일단 부딪혀보았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