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이 아니라 몇 년 살다 돌아와야 했지만 짐을 놔둘 곳이 없어 집안 물건의 반은 주고 버리고 (화분, 책을 가장 많이 버렸다. 다시 버리고 가야 하니 이곳에서 화분은 잘 사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만 컨테이너에 실어 해외이사로 보내고, 나는 아이들과 케리어 4개와 이민가방을 끌고 북경으로 입성했다. 한 달 먼저 와있던 남편이 집을 구해놓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북경에 온 다음날 아이들과 나와봤는데 집 근처 쇼핑몰에 파리바게트가 있어서 간식으로 빵과 서울우유를 사고 계산하는데 습관적으로 해피포인트카드를 냈다. 파리바게트니까 적립해달라고..
(당황해하던 직원 얼굴이 떠오른다 ^^;)
그리고 쇼핑몰을 둘러보는데 한국에서 사용하던 타파웨어 매장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보았다.
"How much is it?"
물었더니 대답이 없다.
한 번 더 물었는데 마찬가지다.
뭐라고 답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써져있는 걸 읽을 수도 없었다.
한나라의 수도에 있는 쇼핑몰에 기본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거기다 나는 중국어로 말하고 듣고 읽고 쓰기가 모두 안 되는 문맹이었다.
순간 어찌 살아야 하나 아찔했다.
며칠 뒤 중국어를 배우는 학교에 등록했다.
일주일 뒤부터 아이들도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중국에 오기 전 남편회사의 해외 주재 생활을 하고 온 분이 왕징은 아주 좁고 중국 주재 생활은 조심해야 하니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처럼 보내고 오면 된다고 조언해주셨다.
남편도 항상 말조심해야 된다 했다. 모든 SNS를 차단했고 새로 가입하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문맹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학교에 가고, 학교 다녀와서는 장을 봐서 한국음식을 그리워하는
가족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하는 것이었다.
카톡에 프로필 사진이 1년 동안 바뀌지 않으니 지인들이 살아있는 거냐고 물어왔다.
그때 나의 생활에 '감성'이라는 사치는 들어올 틈이 없었다.
다른 언어로 수업받고 다른 나라 아이들과 학교생활하는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했고,
신장에 결석이 생겨 새벽에 응급실에 가고 결석 제거 수술을 위해 한국에 혼자 왔다갔다한
남편을 위한 식단에 신경 써야 했다.
거기에 나의 학교에서는 매일 단어시험, 단원평가, 주말에는 회화 숙제, 중간과 기말고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못 올 해외생활이니 빨간 날에는 되도록이면 여행을 갔다.
선택하고 고민하는 것도 사치였다. 머리가 그것이 최선이라 했다.
2년 반의 시간이 지나갔다.
어떻게 사나 했던 중국 생활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자유여행을 다니면서 중국 여행의 노하우와
예약 팁들도 쌓여갔다.
그해 겨울 한국에 가서 마지막 검진 후
3년 만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종양의 모양이 안 좋다며 재검을 권유받았다.
짧은 일정으로 갔는데 조직검사 결과만 나오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했다.
무서웠지만 조직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나오기 전 남편과 개학을 앞둔 아이들을
북경으로 먼저 보냈다.
조직검사 결과는 악성종양이었다.
초기라 진행이 많이 되지 않았지만
위치가 성대 옆이라 진행이 빨라지면
성대가 무사할지 모르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수술을 미룰 수 없었다.
수술 후 조직검사를 기다리며 회복하는 병실에서
나는 후회가 들었다.
'괜찮다고 하지 말고 힘들다 할 걸..
잘 지낸다 하지 말고 외롭다고 울걸..
열심히 살지 말고 대충 살걸..
머리가 시키는 대로 말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편하게 살 걸..'
퇴원 후 첫 외래에서 의사 선생님께
비행기를 언제 탈 수 있는지 묻고
바로 북경으로 왔다.
그리고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3학기 수료 후 어학 자격증을 준비하려 했던
중국어 책은 접었다.
경력단절로 1년에 하나씩 이 나라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따라 했던 계획도 접었다.
연습장을 다니며 이제 봄이 오면 밖으로 나가야지 했던 운동도 접어야만 했다.
책 한 권 들 기운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머리보다는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했다.
나에게 감성이 다시 스며들어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림을 그렸다.
생사의 길로에 잠시 갔다 와보니
그동안 여기서 살았던 기록이 하나도 없었다.
봐주는 이 없어도 조금씩 기록하기 시작했고,
몇 달 지나
붓은 들 수 있을 것 같아
지인이 권해준 화실에 찾아갔다.
하지만 기운이 없어 빨리 그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그림들은 유달리 긴 시간들이 녹아있다.
한 계절이, 두계 절이 걸린 그림도 있었다.
선택은 내가 좋아했던 그림들..
그 시작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클림트를 좋아해서 '엄마와 아기', 고흐의 '아이리스', 모란도 꽃 피워보고
중국 공필화로 작약, 수국도 꽃피웠다.
고흐의 '아몬드 블로썸' 은
내가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던 그림이라
2021년 베이징의 사계절을 담은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그림을 완성했다.
2021년 겨울과 2022년 새해가 담긴..
그 시작은 11월 말, 자칭 나의 앤의 오솔길에
버드나무잎이 남아있던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겨울 하늘이 쨍했던 어느 날에는 흰 매화꽃잎을 칠했다
가끔씩 집에 오는 길에 아파트 동문 파리바게뜨 앞 군밤 할아버지가 파는 군밤을 사 먹던 12월 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