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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우혜우 Jan 13. 2022

정확하게 느끼기를 요구하는 소설

김사과, <영이>

 



 사람은 누구나 가면,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이도 역시 가면을 쓴다. 은영이, 정현이, 주희, 채은이와 만날 때의 영이는 모두 제각각이다. 그 페르소나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모습과 성격에 맞추어져 있는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필수적이다. 누구를 만나던 원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수많은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집단생활에서 여기저기 찢겨 자신을 온전히 보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아마도 페르소나와 자아의 비율을 적정 수준 조정할지언정 자신을 온전히 감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도 아니며 때때로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유리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영이는, 그럴 수가 없다는 점에서 ‘정상성’을 상실한 자아와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다. 진짜, 영이는 그냥 영이는 그 스스로도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열등감으로 꽉 찬 존재다. 썩은 콩보다 더 흉할 정도로 자신을 혐오하는 영이는 그러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 들일 수 없다. 그래서 영이의 영이, 즉 순이를 만들어낸다. 아마 분열증이나 빙의라 불리는 증세의 메커니즘일 것이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나가 뒈져라와 개새끼”로 꽉 찬 부엌과 거실을 견딜 수 있다. 항상 싸우는 부모에게 속으로 “죽어버려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나 의식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순이가 원하는 것이라 전가시킨다. 울음조차도 자신과는 분리된 몸이 우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작 영이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는 텅 빈 존재가 됨으로써 심심하고 멍청한 모습을 보인다.     

  영이의 내면을 꽉 채워 온전한 영이를 삼켜버린 열등감과 온전치 못한 자아는 매일 술을 마시는 아빠와 역시나 무기력한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식탁에서 술을 먹고 있는 아빠에게 “씹새끼, 개새끼, 씨팔새끼” 뭐 이런 욕을 열여덟 개도 넘게 늘어놓으며 술병과 그릇들을 치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영이가 ‘휴우’하고 안심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보통은 아빠의 술-엄마의 욕-아빠의 엄마에 대한 폭력-엄마와 아빠의 싸움으로 진행된다. 

  작가가 말하듯 이 소설은 사실 한 문장으로 서술될 수 있다. 그 한 문장을 이렇듯 수백 개의 문장으로 열거하는 것은 백 문장의 진실과 한 문장의 진실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영이가 느끼는 고통을 한 문장이 지닌 가벼운 진실보다는 백 개의 문장이 지닌 무거운 진실로 독자가 느끼길 원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문학은 한 평론가가 얘기한 것처럼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다. 일상 속에서 떠도는 수많은 가십, 그리고 몇 마디의 문장으로 재단되는 어떤 사람의 인생이나 고통이 실은 그리 쉽게 소비되거나 휘발되어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허구로 창작된 인물이지만 영이는 독자의 마음속에, 작가의 마음속에 영기가 죽고, 내가 죽은 뒤에도 작품으로 남아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게 되는 항구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 

  이 문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가는 달린다. 그것이 욕이 됐든, 몸싸움이 됐든, 밥통으로 자그마한 여자를 치는 것이 됐든, 삽으로 개 패듯 남편을 패는 것이 됐든, 그리고 그 모습을 초등 5학년 여자애가 다 지켜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고 과감하게 달린다. 그리하여 인격적으로 개새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아빠를 진짜 개새끼로 만들어버리는 만용도 불사한다. 이것이 작가 ‘김사과’의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일 것이다. 그것에 대한 호불호는 일단 미루어놓자. 적어도 문학적 역할 한 개는 이룬 듯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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