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에서 징용으로 7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7


그날의 하루해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 마을 어귀에서는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그때 마누라는 나를 바라다보며, "우리 친정에 가서 잠시 놀다가 옵시다" 하였다. 지당한 말이다. 명절을 지냈으면 으레 어른들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도리요 예의이다. 그러나 나는 그마저도 거절을 했다. 나는 "어쩐지 머리가 아파"하고 누워버렸다. 그러자 마누라는 내 이마 위에 손을 얹어 본다. 그러면서 "많이 아파요" 하고 묻는다. 많이 아프다고 하면 놀랄 것 같아서 "아니, 조금..."하고 대답을 회피했다.


마누라는 나와 같이 친정집에 놀러 가는 것이 소원이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프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나는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사랑방에 들어가서 할머님을 보고 진외가 댁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할머님은 "아니 네가 어인 일로..." 하고 반가운 듯이 묻는다. "예, 집에 있을 때 한 번 가볼까 하고요." 할머님은 매우 기뻐했다. 당신께서는 가고파도 근력이 모자라서 갈 수가 없는 친정인데, 손자인 내가 간다고 하니까 할머님은 여간 기뻐하지를 않으셨다. 어디서 어떻게 가면 아주 찾기가 쉽다고 까지 하였다.


할머님은 내 말을 사실인 줄만 알고 그렇게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물론 가족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나는 감쪽같이 온 가족들을 속이고 집을 떠나게 되었다.


한 많은 세상 죄 많은 인간이다. 가족 얼굴을 마지막 본다고 생각할 때 나는 금방 내 눈에서 눈물이 퍽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녀오겠다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동구밖을 지나 고두태모룽에 이르게 되니 나의 무거운 발길은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떨어지지가 않는다. 이제 가면 또다시 고향산천을 찾아올 기약 없는 발길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길가 잔디밭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뒤 나는 다시 한번 고향에 산천들을 휘돌아다 보았다. 친구들과 날마다 오르내리던 장곡길 굽이굽이가 새삼 그립고 보고 싶다. 그리고 별안간 가족들의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인간의 영이별은 사람마다 있다지만

오늘나의 생이별은 눈물없이 못가겠네

고향두고 떠나는길 그님마저 알리없고

불환천리 머나먼길 돌아올날 그언젠고


새옷입은 옷자락에 눈물흔적 웬말이고

기약없이 떠나는길 너무원망 하지마오

뒷동산에 봄이들어 새싹들이 움이트면

고향산천 다시찾아 그대손길 잡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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