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에서 징용으로 6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6


마을 부근에 이르니 동리 아낙네들이 물동이를 이고 오간다. 그 부인네들은 우리가 산돼지를 지키느라고 그때 들어오는 줄만 알고 있다.


조림산 중턱에는 아침 햇살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마을 앞에 이르러서는 제각기 흩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전에 없던 인사를 하였다. 나로서는 그들과 마지막 작별이다. 그러나 그들을 내가 웃으려고 그러는 줄로만 알고 김경달은 소련말로 "도란시 도란시.." 하였다.


그들과 작별을 하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새 옷을 갈아입고 차례상 앞에 가서 섰다. 그 많던 식구들을 죄다 뿔뿔이 헤어지고 차례상 앞에는 할아버님과 나와 어린 동생 세 사람만 서 있었다. 아버님은 일본으로 건너가셨고, 큰삼촌은 당숙에게 양자를 가셨으며, 둘째 삼촌은 만주땅에서 병사를 하시었고, 넷째 삼촌은 미성전에 출가를 하여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사남일녀를 둔 할아버님이셨지만, 그렇게 손자들만 데리고 고독한 차례를 지네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다. 거기다가 나마저 없어진다면 다음 해부터 어린 내 동생과 할아버님 단 둘이만 차례상 앞에 서야만 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프다.


이렇게 된 연유는 모두가 일본놈들 때문이다. 그들이 공출을 거두어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 집은 많은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살 수가 있다.


아버님이 외국으로 망명을 하신 것도 일본 놈의 강압에 못 이겨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집을 떠나는 그 이유도 왜놈들이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다. 전적으로 일본놈들 때문이다.


차례를 지낸 뒤 나는 내방으로 건너갔다. 나 혼자만이 알고 집을 떠난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불효를 끼치는 것이요, 처에게는 차마 못할 짓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경속하게 가족들에게 이렇습니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인간의 목숨이기는 하나 내 목숨이 그 말 한마디에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팔월대보름날인데도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옥산댁 마당에서는 동리 사람들이 다들 모여 차례를 지낸 뒤 마당에 둘러앉아 술잔을 나누면서 허허 하하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웃는다. 그러나 이날에 우리 집만은 전연 그 반대이다. 차례를 지낸 뒤 할아버님은 사랑으로 내려가셨고, 나는 내 방으로, 형수는 머릿방으로, 어머님과 할머님은 큰방에서 각각 제방으로 들어갔으니 적적할 수 밖에는 없다.


여러 삼촌들과 숙모님들이 있을 때만 하여도 우리 집안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던 우리 집이 졸지에 그 모양이 되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록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그러할 때는 우리 할아버님의 심정은 그 열 배도 더 서운할 것이다.


설거지를 끝마친 마누라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의 차가운 손을 꼭 거머쥐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내가 별안간 그렇게 하자 처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여보, 미안하오. 내가 죽지 않으면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으리다. 부디 부모님 슬하에서 몸 편히 잘 있소." 하고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마누라는 내가 당신의 손을 잡은 것에 만족하게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한 사람을 버리고 떠나는 그 마당에서 사탕발림으로 사랑하는 척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미워서도 아니요, 그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다. 나도 당신도 다 같이 살아보자는 뜻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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