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에서 징용으로 8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8


자탄의 한숨을 길게 쉰 다음 고두태산모룽을 떠났다. 나오는 눈물은 스쳐도 스쳐도 하염없이 나온다. 인간의 못할 바는 살아 영이별이다. 어릴 적부터 초동목동으로 자라나서 이십여 년간을 성장했는데도 나의 몰골은 항상 그 모양 그 꼴이다.


어쨌건 간에 나는 오후 한 시까지 군위군 경찰서에 가야만 한다. 나오는 눈물을 스치면서도 나는 게을리 걸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하여 걸었다. 차도로 걸으면 오리가 더 멀다. 그래서 나는 지름길로 들어섰다.


겸양동을 지나 강변도로에 이르렀을 무렵 우리 마을 구장이신 인산 어른이 나타났다. 그분은 우리 집 바로 뒷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분은 마을 구장이기 때문에 친일파라고도 할 수가 있다.


나는 그분을 만나게 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박서방 아이가? 자네 어디를 가는데 이렇게 일찍 가노?"하고 인산 어른은 만나자마자 물었다. "예, 의성 진외가 댁에 가는 길입니다. " "응, 그래? 그러면 얼른 다녀오게나."


난 인산어른을 만난 것이 몹시 내 마음에 걸렸다. 내일이라도 그분이 주재소에 찾아가서 내가 간 곳을 댄다면 그들은 금방 나를 잡으려고 온다. 그것은 아프다는 자가 놀러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갓집 집안사람이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죄를 짓고 떠나는 나로서는 왜인가 그러한 생각밖에 들지가 않았다.


그 어른은 일본 사람들의 말이라면 콩을 가지고 팥이라고 하여도 곧이듣는 사람이다. 그것을 가리켜 사람들은 친일파 또는 민족배반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발난중이다. 일단 집을 떠난 이상 누구 하나가 두려워서 좌절할 수는 없다. 나중에 죽는 한이 있어도 한 번 굳힌 마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용기를 내어 더욱더 걸음을 빨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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