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9
이흥우보를 지나 군위군 경찰서에 이를 무렵에는 정오가 조금 지났을 때이다. 거기에 가서까지 내 마음속에는 인산 어른이 꺼림칙했다. 경찰서 정문에 들어서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모여 있었다. 적어도 백 명 이상이다.
거기에 모인 그들은 모두가 강제로 끌려가는 사람들이다. 참으로 한심스럽다. 죽어야 할 구덩이인줄 알면서도 안 가고는 못 배겨 내는 우리 민족들, 가족들이 경찰서까지 따라와서 울부짖는 그 광경. 어떤 노인은 아들의 두 손을 꼭 거머쥐고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할까 봐서 엉엉 흐느끼며 우는 사람도 있었다.
잠시 후 일본 놈이 하나 나와 모집자들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태방우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늘 "가네모토 아끼나리"하고 외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도무지 나오지를 않는다. 이제 남은 사람을 열명도 채 못된다. 어찌 된 일일까? 나는 조바심이 났다. 혹시 누군가 신고라도... 아니, 설마...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맨 끝에 "가네모토 아끼나리"하고 부른다.
나로서는 반가웠다. "하이" 하고 얼른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나이도 스물여덟 살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일본놈은 "요시, 이께"라고 하였다.
스물한 살 나이에 스물여덟 살이라고 하여도 그자는 조금도 의심치 않고 좋으니까 가라고 하였다. 일곱 살을 더 얹어서 대답을 해도 좋다고 말을 하였으니 내가 그때부터 그만큼 걸망 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군위 경찰서에서 신체검사 모근 검사에 합격을 하였다. 그런 뒤 우리 일행은 곧바로 자동차를 타고 부산까지 달려갔다.
부산항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그러므로 전자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으나 어디가 어딘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인솔자가 일본놈이다가 보니 무엇을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다. 우리들은 눈먼 말처럼 워렁(워낭) 소리만 듣고 따라다니는 그 격이었다.
어느 식당으로 왜놈이 인솔을 한다. 백 수십 명이 한 집안에 들어갈 수가 있으니, 식당치고는 꽤나 큰 식당이었다. 저녁밥을 줄 모양이다. 나는 집에서 아침밥을 먹은 뒤에는 그때까지 입맛하나 다시지 않고 쫄쫄 굶고 있었다. 그러므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얼른 저녁밥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뽀이들이 무엇을 접시에 담아가지고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빵이었다. 한 사람 앞에 빵 두 개씩을 주었다. 점심밥을 굶었으니까 참으로 주는가 보다 하고 빵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다. 그런데 이것은 빵이 아니라 약이었다. 얼마나 쓴지 말도 못 할 정도였다. 그 빵 속에는 순전한 보리가루로 만든 것이요 빵을 만드는 참밀가루는 조금도 섞여있지를 않았다.
그렇게 배가 고픈데도 빵 반 개를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입이 써서 오히려 먹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그러나 일본놈은 빵 그것이 저녁이라고 하였다. 그럴 수는 없다. 우리 조선 사람들을 무시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개나 돼지를 준대도 그 빵은 먹지 않았을 것이다. 쓰기로 말하면 소태와 꼭 같았다.
그것으로 저녁을 때운 다음 우리 일행은 부산 수상경찰서(1920. 1. 20 설립, 1957 부산영도경찰서로 개칭)로 끌려갔다. 거기에서 또 신체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그 검사는 하나의 절차에 불과한 것으로 몸만 튼튼하면 그저 눈 조정으로 합격 합격하고는 밀어 넣는다. 백수십 명의 신체검사를 단 일분도 되지 않아 해치운다. 수족만 제대로 놀리게 되면 속병 따위는 있건 말건 무조건 "요시, 요시" 하였다. 그자들이 그렇게 단순하게 신체검사를 한다는 것은 그마만큼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그러한 뜻도 된다.
우리 일행은 금방 신체검사를 다 마치고 부산항 제일부두에 매어져 있는 "공고마루" 연락선에 올라탔다.
일반 손님들이 이등객실에 일본놈들은 일등객실에 노무자 우리 일행은 삼등객실에 올라탔다. 그 연락선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들 일행은 제일 아래층에 타고 있는 것이다. 그 아래층을 말하면 반은 물속이요 반은 물 위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작은 유리창 구멍을 내다보면 바닷물이 바로 눈앞에 닿아 있다. 배를 타는 것부터도 왜놈들은 인간 차별을 그렇게까지 하였다.
하지만 탈영을 한 나로서는 그 연락선에만 올라타도 마음이 놓이는 듯하였다.
잠시 후 연락선은 부산항을 떠났다. 나는 선상으로 올라가서 달빛 어린 해경을 바라다보았다. 달은 대낯같이 훤히 밝다. 오륙도를 지나 태평양 "겐카이(현해탄을 일컬음)" 바다에 이르게 되니 산도 육지도 전연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보이는 것은 출렁이는 바닷물 그것뿐이다.
차츰차츰 멀어지는 조국산천 뒤로하고
왜놈노예 안되려고 달아나는 나의심정
가습답답 애가타서 조국산천 돌아보며
어머님요 큰소리로 불러봐도 대답없네
돌아오지 못하는길 가야만이 살거라고
부모형제 다모르게 매정하게 간다만은
왜놈들이 망하기전 돌아올수 없게되니
나를원망 하지말고 님이시여 부디안녕
달빛 어린 검푸른 넓은 바다를 바라다보며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망망대해 거친 물결을 헤치며 질주하는 연락선 머리에는 끊이지 않고 부딪히는 하얀 물결들 그가 부서질 마다 솨악 솨악 하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