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5
나는 포항 항구에서 비단 장수를 하고 동생은 집에서 농사를 지으니 우리 식구가 열식구로 늘어났으나 살기에는 오히려 지난 해보다가 나은 편이었다.
나도 조금씩 포목장사에 이력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상꾼들도 나를 믿고 얼마든지 물건을 쓰라고 내게 도리어 부탁을 하였다. 그러므로 여러 중상인들이 내게 찾아와서 부탁을 할 때에는 우선 자기 물건부터 사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러함으로 해서 나는 외상일 망정 대상처럼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고, 한편 자신감을 가지고 장사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허울 좋은 비단장수이다. 남의 물건으로 장사를 하다가 보니 얼른 물건을 팔아 중상인들에게 물건값을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자인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항상 쪼들림을 받아, 박리다매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한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족숙되는 분도 나와 꼭 같은 입장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번지르르하면서도 실속은 없었다.
나는 그래도 독신으로 살고 있으니 삶의 구애는 받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식구를 둔 족숙께서는 많은 식구가 살다가 보니 생활비도 많이 들지만 집세까지 내야 하니 오히려 쪼달림은 나보다가 더 한 듯하였다.
나는 그래도 간간이 집으로 농자금을 부쳐주곤 하였지만 양국아저씨는 그 마저도 힘에 부대껴 집에 있는 어른들이 불만을 토하곤 하였다. 그다지 돈을 벌 수가 없으나 모든 중상인들이 나를 신임하고 대상 부럽지 않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니까 나중에는 여하튼 간 당장에는 삶의 보람을 맛볼 수가 있었고, 돈도 벌 수가 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때 나는 행상장수를 한 셈이다. 안강장, 구령포장, 장기장, 감포장을 보았는가 하면 또한 오일장은 흥해장, 청항장, 강구장, 영덕장, 영해장으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팔았다. 그러므로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 곳곳마다에 소위 단골손님을 많이 사귈 수가 있었고, 그러므로 물건 값도 차츰 제대로 받을 수가 있었다.
무엇 보다가도 장사를 하는 데는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에게 부드럽게 대해주고 또 그 손님의 심리를 파악하여 이 손님은 이렇게 대해줘야 하고, 저 손님은 저렇게 대해줘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아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하며, 어쨌건 손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사로잡아야 한다.
한 마디로 장사하는 사람은 친절이 제일이다. 여간 궂은 말을 듣더라도 불쾌히 생각을 하지 말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감을 사도록 하여야만 하는 것이 수단이요 방법이다.
나와 같이 외장을 다니는 이노인이라는 사람이 한 분 있었다. 그분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고 마음이 꼿꼿하여 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참지를 못하고 왈칵 거친 말을 손님들에게 내뱉는다. 그러므로 간혹 손님이 왔다가도 그분의 말투가 불쾌하여 물건을 사지 않고 돌아가곤 하였다.
그 하나만 보더라도 장사를 하자면 무슨 장사든 간에 그 속이 푹 썩어야 한다. 똑같은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데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서 그 물건을 살 리가 없다. 해서 똑같은 물건을 가지고 같은 장에 가서 물건을 팔지만 이노인은 언제나 매상고가 나의 반밖에는 안된다.
그것은 그분의 물건이 나빠서가 아니다. 단 사람의 심리를 알지 못하고 그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