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의 험란한 삶 6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6


집을 떠날 때 나는 목수도구를 가지고 나섰다. 그 당시 영암철로를 만들고 있을 때인지라 나는 목수도구를 가지고 그리로 먼저 달려갔다. 왜냐하면 그전에 내가 영암선 십일 공구와 칠 공구와 육공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경험이 있기에 그 길로 들어선 것이다.


먼저 이십일공구로 찾아갔다. 영암선 21공구는 터널은 없고 전부가 석축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목수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대동공업회사에서 석축일을 하게 되었다.


그 석축의 도급자가 신덕 1동에 사는 박용달이라는 사람이기에 그분이 나를 먼저 청하여 내가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석축에 대해서는 아주 서툴다. 그러나 고향사람인 용달씨가 나를 청해 일을 하게 된 것이니, 약간 잘못이 있어도 일만 튼튼하게 하여 기차가 다녀도 끄떡없다면 검사에는 그다지 신경을 안 써도 된다. 철로일이란 미관 보다가도 튼튼한 것이 제일이다. 겉만 번지르하고 실속 없이 부실공사를 했다가는 그 공사를 다 했다고 해도 다시 뜯어 새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함으로 나는 일은 잘하지 못해도 튼튼하게만 하였다. 그러자 얼마가지 않아 철도감독관들도 나를 믿고 일을 시켰다.


그런데 그 공사가 끝이 나기 전에 20공구 삼양토건에서 나를 찾아왔다. 21공구에는 터널과 교량 공사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공사장에서 내가 철도굴 목수라는 것을 알고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해서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을 그만두고 약간의 노임을 찾은 뒤 20공구로 내려갔다. 그곳에 굴의 길이는 600미터 한 개와 50미터 한 개가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650미터의 공사가 내가 할 일거리이다.


물론 거기에는 대모도 할 일꾼이 있어야 하고, 잡부일꾼도 많이 필요하다. 20공구의 원도급자는 내가 몇 번 본 사람 손수익이라는 사람이다. 나는 그 손씨 밑에서 하청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굴 목수도급자이다. 13공구, 7공구, 6공구에서 목수일을 하기는 했으나 도급자가 되어 일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그 익일부터 곧바로 굴 일을 시작했다. 굴 일이란 잘못되고 잘되기가 거의 전적으로 목수에게 달려있다. 굴 속에는 다부라고 하는 푯말이 10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땅바닥에 박혀있다. 그 다부라는 것을 자칫 잘못 맞추게 되면 양쪽에서 파고 들어가는 굴인지라 그 중심에 가서 어떻게 맞아줄지 더군다나 20공구의 굴은 15 커브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해야만 한다. 다부 하나만 잘못 계산하면 지금 돈으로 치면 수억 원이 든 굴이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굴에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그것을 가리켜 고바이라고 한다. 그 고바이도 10 고바이 또는 20십 고바이가 있다. 그러므로 다부와 고바이 모두가 나에게는 큰 두통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도 내 뇌리에는 그를 걱정하고 그를 계산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내가 영암선에 일을 할 때만 하여도 요즈음 세상처럼 쇠로 만든 가다와꾸가 없었다.


다이바로, 샌도루, 구시가다, 우와가 등등은 모두가 춘양목으로 사용을 했다. 그러므로 그 재료를 운반할 때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굴 내부 콘크리트를 할 때도 요즘과 같지 않고 순전히 손으로 하였다.


기차를 타고 다니면 굴의 내부가 그저 그렇구나 할 정도로 그 내력을 잘 모르지만 실은 그때 시절에 모든 공사가 수동으로 이루어질 때는 그 내부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굴입구에 구조된 앤도스라고 하는 것도 심히 어려운 것이요, 굴 속 양쪽에 두개스이또랑(굴 내부의 배수 시설) 또 벽에 붙은 사람들의 피신처 그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더군다나 굴 속에는 캄캄한 밤중이다. 그러므로 일을 할 때에도 간드레 불(광산에서 사용하는 휴대용 카바이트 등)을 켜놓고 일을 한다. 그 당시에 영암선에는 전등불도 없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 일을 할 때는 호야불 비슷하게 생긴 만또링이라는 불을 켜놓고 일을 할 때도 있다.


이와 같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나는 20공구 굴을 석 달이 다 못되어 끝을 맺었다. 그리고 내가 집에서 가지고 나간 돈은 모두 다 인부들의 전표와 교환하여 노임과 전표와 모두 합치면 30여만 원의 돈이 되었다. 논을 판 돈 십 수만 원인데, 삽십여 만원이 된다면은 이제 그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내 체면을 세울 수가 있고, 논 여섯 마지기를 사도 너끈하다.



[추가 설명: 윗글에는 매우 생소하거나 알기 어려운 건축 또는 석축 관련된 용어가 많은데,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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