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9
허나 일이 이미 그쯤 되었으니 재판을 받지 않고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김노인과 나는 법에 따라 경찰서에서 서대문 형무소로 넘어갔다. 근 일 년 만에 겨우 하나 얻은 일이 그 모양 그 꼴이 되었으니, 나보다가도 우리 가족들의 삶이 더 난감하다. 더군다나 그때 어른들까지 한 집에서 살고 있을 때인지라 생계의 쪼달림이 더할 것은 뻔한 일이다.
재판은 하루 이틀에 끝이 나지를 않았다. 더군다나 파괴된 집주인이 대령이요, 죽은 사람은 대령의 부인과 아들이니 그 상대가 우리들의 죄상을 더욱 무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85일 동안 형무소 안에 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 것이다.
돈 한 푼 없애놓고 집을 떠난 나로서는 모두가 굶어서 죽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음력 팔월 열 나흗날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다들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은 집사람의 피땀 어린 고달픈 노고로 그렇게 된 것이다.
죽지 못하여 처는 행상 장수를 한 것이다. 그것도 머리에 짊어지고 다니는 소위 냉면장사를 해서 우리 온 가족들의 목에 풀칠을 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집사람이었지만 삶의 생활력은 누구보다가도 강인한 여인이다.
석 달 가까운 동안 집사람이 그렇게까지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우리 식구들은 굶어 죽을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때로는 나와 입다툼도 하고 의견 충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 사람의 우리 부모님에 대한 효성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을 만큼 지극하였다.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처가 고마웠다. 나는 내 자신의 모자람 때문에 마누라가 내 대신 많은 고생을 하였고, 정신적 고통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간혹 처를 나무라면서도 처의 고마움은 잊지 않는다.
팔월 열 나흗날 형무소에서 나와 나는 추석 직후 곧바로 일자리를 구하러 나섰다. 정릉 유원지 부근에 중앙산업에서 일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리고 찾아간 것이다. 현장에 찾아가 보니 내가 잘 아는 이철씨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웬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 현장의 소장으로 나와있다고 말했다. 끼닛거리가 없는 나로서는 심히 다행한 일이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죄다 얘기한 다음 그에게 선불을 좀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철씨는 두말하지 않고 쾌히 승낙을 하였다. 돈이 아닌 쌀을 한 가마니 주었다.
무엇이든 간에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다. 그 시절에 쌀 한 가마니라면 석공들의 품삯 삼사일치 밖에 안된다. 일이 없어서 그러하지 일거리만 있으면 먹고사는 것쯤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근 4개월 동안 일을 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일을 손에 잡으니까 허둥허둥함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근 석 달간 그늘에만 처박혀 살던 나이다 보니 처음 햇빛을 보니 눈이 부셔서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