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창기 생활 (탄광) 6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6


나는 개스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본다. 인솔자는 꽉 닫힌 문을 열라고 우리들에게 말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나는 닫힌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누군가가 잠근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인솔자에게 문이 잠겨져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러나 인솔자는 잠겨져 있는 문이 아니라고 하면서 두 사람이 달려들어 힘껏 당기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두 사람이 달려들어 힘을 다하여 당겼다. 그러자 문은 쾅하고 열린다.


문이 열리자 그 문안에서 나오는 훈기는 사람의 얼굴을 화끈하게 해 주었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니 별안간 온몸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적어도 사십 도는 훨씬 넘는 듯하였다. 그렇게 더울 수가 없다. 유월달 삼복더위도 그렇게 더울 수는 없다. 그것은 가스의 힘인 모양이다. 인솔자가 말하지 않아도 개스의 열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 문을 열고 약 백 미터쯤 들어갔다. 그것이 그 굴의 끝이다. 그러나 석탄을 캐는 장소는 거기가 아니었다. 일 미터도 못 되는 아주 얕은 굴이 또 하나 있었다. 일어서기는커녕 앉아서 기어들어가도 이마가 천장에 자꾸 받혀 모자가 훌렁훌렁 벗겨진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한두 시간이라면 또 모른다. 꼬박 열두 시간을 일을 해야 할 장소가 그 모양이다.


더워서 땀이 나는 것쯤은 능히 참을 수가 있어도 반쯤 누워서 석탄을 캐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엄연히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반쯤 누워서 탄을 캐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우리 조선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비참한 현실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말이다.


탄광 구조 전부와 환경을 구경한 우리 일행은 석양 나절이 되어서야 기숙사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현장을 돌아보고 온 우리 일행은 모두가 하나같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고 말을 한다. 오가는 행로도 그렇지만 숨통이 콱콱 막히는 개스통 안에서 하루 종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중노동을 해야만 하니까 어찌 걱정이 아니 되랴. 차라리 형무소에 들어가서 징역을 산대도 그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끌려간 몸인지라 이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기구한 팔자로 낙착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다음 날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갱내로 들어가서 석탄을 캐기 시작했다. 무연탄이 아닌 유연탄인지라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반쯤 누워서 석탄을 캐기 때문에 옆구리가 틀리고 모가지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실낱 같은 목숨은 용이하게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일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군위군 경찰서에서 나를 조선 땅으로 돌려보내는 전문이 날아왔다. 그 죄목은 탈영병이다. 그래서 나는 그다음 날 노무실로 불려 갔다.


"네가 미스하라냐?"

"그렇습니다."

"왜 훈련을 하다가 도망을 했느냐?"

"나는 일본 군인인데도 일본말을 전연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일본말을 배우기 위하여 말하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주를 하면 되는가?"


나와 얘기를 하는 사람은 우리 조선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편에 서서 통역을 해 주었다. 그러자 일본놈은 얼마 동안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일을 하면서 훈련을 받겠느냐고 하였다. 나는 기회라 생각을 하고 얼른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왜놈은 이 탄광 내에 당신과 같은 사람이 두어 명 있으니 그들과 같이 훈련을 받으라고 하였다.


나로서는 만 분 다행한 일이다. 그들 역시도 내가 그렇게 하게 되면 일거양득이다. 피차가 마찬가지다. 나도 사실은 그자들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언젠가는 그 탄광을 떠나리라 생각을 하고 임시변통이다.


허나 그 탄광 내에 있는 동안에는 그 고통이 여간 아니다. 수천 미터 땅속에 들어가서 하루 온종일 일을 하고 들어오면 저녁밥을 먹기가 바쁘게 또다시 나가 군사 훈련을 받아야만 하였으니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는 배겨낼 수가 없는 일이다.


밤에 나가서 훈련을 받는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삼백 촉짜리 전등불을 운동장 네 귀에 켜놓고 세 시간 동안을 훈련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하여 눈도 뜰 기운이 없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라면 참을 수가 있다. 이것은 그것도 아니다. 우리가 훈련을 다 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까지는 날마다 그 노릇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탄광에서 도망을 칠 거라 결심을 했다. 훈련을 받기 바로 직전 나는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새로 받은 적이 있다. 그 병원은 철조망 바로 밖에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주위를 눈여겨봐 두었다. 철조망을 뚫지 않고도 나갈 구멍을 봐 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회를 봐서 나가려고 굳게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우선 의복이 큰 문제이다. 옷을 입어야 도주를 할 텐데 긴 옷을 가지고 나갈 궁리가 나지 않는다. 빤스와 같은 탄광옷을 입고 도주를 한다면 십리도 못 가서 잡힐 것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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