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창기 생활 (탄광) 8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8


다음날 저녁 미모도씨와 나는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노무실을 찾아갔다. 먼저 항내에 들어간다는 표시로 이름표를 뒤집어 놓았다. 현장에 일을 하러 들어갈 때는 그렇게 해야만 출근했다는 표시가 된다.


이름표를 그냥 덮어두면 하루 종일 일을 하였어도 그 사람은 그날에 논 것으로 간주되어 일당이 나오지를 않는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일로 출근을 하지 않나 하는 것을 조사를 하게 된다. 아무 탈 없이 그냥 논다는 것을 일본놈들이 알게 되면 하루 놀았는데도 이틀 치 품삯을 까게 된다. 그래서 웬만한 감기쯤을 누워서 있을 수가 없다.


미모도씨와 나는 이름표를 돌려놓았으니 그날 하룻밤만은 아무런 일이 없다. 그런 뒤 우리는 곧바로 빵집으로 들어갔다. 항내에 들어갈 시간이 저녁 일곱 시이니까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일곱 시가 되면 날이 저물게 된다. 그때를 틈 타 우리는 행동할 작전이다. 빵집으로 들어간 이유도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일곱 시가 채 못되어 밖에는 어둠이 찾아든다. 우리는 빵값을 지불하고 빵집에서 나왔다. 항내 항외에 일을 하고 가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오고 가고 길거리가 분답하다. 우리는 그 틈을 타서 사택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수없이 많은 사택에는 모두가 우리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고 달려갔다. 그 골목은 아주 조용하다.


나는 불문곡직하고 아무 집이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 뒤에 주인을 불렀다. 방문이 열리며 누구요 하며 중년부인 한 분이 나온다. 그분은 우리 모친과 비슷한 나이인 듯싶다. 그래서 나는 첫 낯에 그 부인에게 모친이라고 하였다.


그런 뒤 나는 내 사정 얘기를 대충 했다. "우리는 지금 이 탄광에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쯤 아시고 우리 두 사람을 이 댁에 조금 머물게 해 주시오. 이 부엌에라도 좋습니다." 내 말을 들은 부인은 놀란 표정을 지으시면서 "알겠소, 얼른 방으로 들어오시오." 하였다.


"예, 고맙습니다." 하고 우리는 부인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조금 넓은 편이다. 윗목에는 의농이 놓여 있었다. 아줌마는 우리들을 보고 그 농 뒤에 가서 있으라고 하였다. 참으로 고마우신 아줌마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고는 하나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미모도씨와 나는 아줌마가 하라는 대로 의농 뒤에 가서 앉았다. 그것이 왈 동족의 의리요 인정인 모양이다. 그 부인이 우리들에게 안 된다고 거절을 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슬아슬하다.


얼마 후 벽에 걸린 시계가 땡땡 열두 번을 친다. 나는 미모도씨에게 우리 이제 출발해 봅시다 하고 일어났다. 그러자 그 댁 아줌마는 우리들에게 열백번 거듭거듭 조심 또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전자에 그 탄광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다 말해 주셨다.


도망을 치다가 들키게 되면 병신이 되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맞아 죽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였다. 부모님이 자식 걱정을 하듯이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고맙게 해 주셨다.


우리는 아줌마랑 작별하고 문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꽉 덮혀져 있고, 간혹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음력으로 치면 조각달이 있을 때이다. 그러나 이날 밤은 칠흑처럼 깜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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