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본 적응기 12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2


고노하라에서 일을 끝마치고 우리는 그곳을 떠나 시모호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시모호리 그곳에서도 똑같은 일이다. 비행기가 들어앉는 앤다이고라는 것이다.


고노하라와 시모호리 사이에는 가노야 비행장이 있고, 그 거리는 약 십리쯤 된다. 그런데도 다나까 에이고는 며칠 만에 한 번씩은 꼭꼭 나를 만나러 왔다. 그래서 남들은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보통으로 보지 않았다. 허나 우리는 그때까지도 손도 한 번 잡아본 일이 없다.


그렇지만 에이고는 내 곁에 와서 이야기하는 것만도 족한 모양인지, 만남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하게 내왕을 하였다. 세상 누구도 내가 탈영을 한 사람인줄은 전연 모른다. 뿐만 아니라 내가 기혼 남자라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그저 총각 미스하라로만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에이고가 내게 접근을 하는 것이다.


시모호리에 가서는 우리 일행은 판자로 만든 소위 바라꼬 집에 살고 있었다. 온대지방인지라 그때 그곳에는 벌써 한 여름의 기분이 날 정도로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현장에 나가 조금만 일을 세게 해도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곤 하였다.


그러므로 바라꼬 집에 살아도 이부자리가 필요 없고 춥다는 것을 전연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 한 방에는 삼십여 명의 많은 조선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요일 비가 오는 날이다. 우리 한방에는 노름판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우리 조선 사람들 만이 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일본인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 역시 앤다이고를 만드는데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게가 나이 많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전쟁을 하고 있는 때인지라 일본인 젊은 사람은 하나 빠짐없이 죄다 전쟁터로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고로 당시에 일본땅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 노름판에 온 그자들도 다들 사십이 넘은 중년층들이었다.


나이가 많으니까 그들은 살아온 경험도 많지만 더욱이 노름에 대해서는 다들 박사이다. 그러함으로 우리 조선 젊은 사람들은 그날 많은 손해를 보았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과 싸움이 벌어졌다.


노름에는 일본인이 능숙하지만 싸움에는 우리 젊은 조선 사람들이 우월하다. 그러므로 그날 싸움에서 일본인들이 많이 맞았다. 그것이 사건이 되어 일본놈들은 큰 싸움을 걸겠다고 우리 한방으로 통지가 왔다. 일본놈들 한방에도 수십여 명이 집단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노가다에서만 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포악하기가 여간 아니다. 그리고 숫자도 우리 조선사람들 보다가는 훨씬 더 많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객이요 왜놈들은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여러모로 우리 조선사람이 불리하다.


그러므로 우리 한방주인은 우리 회사 사무실로 찾아가서 오노 사장에게 그 사실을 죄다 말하였다. 그러나 오노 사장인들 그와 같은 일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두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놈들의 싸움 통보에 대해서는 우리 한방사람들도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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