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생이 그렇게 궁금하세요?

결혼, 제가 알아서 할게요. '결혼 앵무새'들에게

by 비타민W

회사에는 결혼을 인생 최대의 업적이나 국가적 과업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일명 ‘결혼 앵무새’. 그들은 마주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내뱉는다.


“결혼 소식은 아직이야?”
“좋은 사람 만나야지.”
“이제 슬슬 할 때 됐잖아??”


이 말만 무한 반복하는 그들을 볼 때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저 사람들,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해본 적은 있는 걸까. 스몰토크 능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결혼이 유일한 만능 화제라고 믿는 것인지 그 속내를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


곤장 맞을까 봐 무서운 걸까

조선시대에는 서른이 넘도록 자녀를 혼인시키지 않은 가장을 벌했다. 딸이 시집을 못 가면 아버지가 곤장을 맞기도 했고, 가난한 미혼 남녀에게는 국가에서 혼수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원한 맺힌 미혼 남녀가 많으면 나라에 재앙이 든다는 기괴한 믿음 때문이었다.


요청하지도 않은 소개팅을 구걸하듯 추진하는 결혼 앵무새들을 보면, 마치 본인의 곤장이 예약되어 있는 사람처럼 절박해 보인다. 도대체 왜 남의 인생 스케줄표에 본인이 직접 ‘결혼’이라는 빨간 펜을 그어대는지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내 취향은 무시된 '묻지 마 중매'

동료 A 씨는 30대 중반의 미혼이다. 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와 이를 방관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그녀에게 결혼은 환상이 아닌 ‘기피 대상’에 가깝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연애는 하겠지만, 연애의 종착지가 반드시 결혼이어야 한다는 공식은 그녀의 사전에 없다.


하지만 결혼 앵무새들은 그녀의 사정과 가치관 따위 가볍게 무시한다. 이 무례한 ‘중매’가 본인들의 고귀한 취미라고 굳게 믿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OO 씨 어때? 진국이야, 든든해!”

“오늘 OO씨도 불러서 같이 술 한잔 할까??”


진국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A 씨 취향이 아닌 건 확실했다. 이성 관계는 정답이 정해진 객관식 문제가 아니다. 곰처럼 든든한 OO 씨 스타일을 추천하는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겠지만, A 씨는 날카롭고 지적인 스타일을 선호했다. 그녀는 그저 억지웃음을 지으며 “누굴 만날 생각이 없어요”라고 방어할 뿐이다. 취향을 설명했다간 "눈이 높아서 못 간다"는 뒷담화로 번역되거나, 거론된 상대방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혼이 있다고 단체 기합을 받는 조선시대가 아니다. 인생의 결정권은 국가나 상사가 아닌 오직 본인에게 있다는 상식, 그 당연한 사실을 무례한 자들에게는 정확히 짚어줘야 한다.


사생활을 '안주'로 올리는 무례함

어느 날은 후배 B가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찾아왔다. 한겨울임에도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그녀는 말했다.

“선배, 정말 가짜 남자친구라도 만들어야겠어요!”


사건은 팀 회식 자리에서 터졌다. 몸이 좋지 않아 불참한 B를 안주 삼아 팀장이 한마디 던진 것이다.

“B 씨 남자친구 없으니까 소개 좀 해줘요!”


그 자리에선 띠동갑 거래처 사장님부터 지인의 지인, 돌싱까지 온갖 추천이 쏟아졌다고 한다. B가 없는 자리에서, B의 남은 인생이 한창 논의되고 있었다.


후배는 분노했다. 왜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사생활이 술안주가 되어야 하는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갑자기 '남미새(남자에 미친 사람)'처럼 포장하여 구걸하듯 소개팅 구걸을 당해야 하는지. 그 모욕감에 B는 결국 팀장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뭐 어때요. 다 B님 생각해서 그런 거지. 그리고 나이도 있는데 돌싱이면 어때서요?”

사과는 없었다. 반성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남의 인생 사냥을 '애정'이라 부르는 착각

도대체 누구를 위한 ‘생각’인가. 본인의 유희를 위해 타인의 사생활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는, 아랫사람을 챙기는 넉넉한 어른인 양 구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어른이’였다. B가 분노한 본질은 상대의 조건이 아니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개인의 삶을 가볍게 휘두르는 그 무례함에 사과받고 싶었을 뿐이다.


타인의 삶을 제멋대로 주무르며 느끼는 그 저급한 권력욕을 왜 '어른의 걱정'으로 포장하는가. 그것은 애정이 아니라, 자신의 지루한 일상을 채우기 위한 타인의 삶에 대한 사냥일 뿐이다.


“남의 집 장 담그는 데 소금 치러 다니는 사람치고 속 찬 사람 하나 없다.”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본인의 삶이 공허한 사람들이 대개 남의 집 담장을 넘겨다본다. 결혼은 퀘스트 완료 후 받는 훈장이 아니다. 나 또한 기혼자지만, 결혼했다고 유세 부릴 거리는 눈곱만큼도 없다. 마찬가지로 이혼했다고 인생이 실패한 것도 아니다. 각자의 속도대로 흐르는 인생의 한 장면일 뿐이다.


결혼을 먼저 했다고 해서 인생의 큰 숙제를 끝낸 선구자처럼 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어른으로서 걱정한다’는 핑계로 남의 집 담장을 넘겨다보는 건 어른스러운 행동이 아니다. 그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예의 없는 떠벌이일 뿐이다.


진짜 어른은 남의 집 장독대에 소금 들고 쫓아다니는 대신, 제 집 장독대나 한 번 더 살필 줄 안다.

남의 인생 참견할 시간에 내 마당이나 잘 가꾸며 살 일이다.


그거 하나 제대로 하기에도, 인생은 충분히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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