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미소를 호감으로 착각하는 이들에게
회사에서 순수하게 업무에만 몰두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실 엑셀과 씨름하는 시간보다, 사람들과 업무적 또는 개인적 소통을 이어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긴 것 같다. 문제는 그 모든 소통이 늘 유쾌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피곤한 회의, 지루한 스몰 토크, 혹은 불편한 상사와의 대치 속에서도 우리는 소통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때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기술'이다. 대화가 끊기거나 정적이 흐를 때 자동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그 미소. 입꼬리는 경련하듯 올라가지만 눈동자는 식어 있는, 바로 그 유명한 ‘회사용 웃음’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호러 스릴러로 변하는 순간
동료 A는 늘씬한 키에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문제는 그 눈웃음의 '수신자'를 오해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옆 팀 B는 그녀의 사회적 예의를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로 오해했고, 그날부터 눈치 없는 대시를 퍼부었다.
급기야 남의 팀 회식에 자기 팀을 '플러스 원'으로 끼워 넣는 진상 짓을 벌이더니, 눈치 없는 B의 주변인들까지 "둘이 뭐야~?"라며 멍석을 깔아주는 기묘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B는 마치 드라마 남주인공에 빙의한 듯 낮게 읊조렸다.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A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B는 이미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비장한 표정으로 큰길까지 뛰어가 택시를 잡고 있었다. 본인 눈에는 '집까지 바래다주는 로맨틱한 기사님'이었겠지만, A의 눈에는 '강제로 합승을 시도하는 납치범'과 다를 바 없었다. 원치 않는 호의가 폭력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호러 스릴러로 장르 전환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눈치를 저녁 식사와 함께 말아먹은 듯한 주변인들은 매너남이라며 그를 추켜세웠고, A 씨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택시 합승이라는 불안감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결국 그녀는 단전에서 끌어올린 사자후를 내뱉었다.
"아아아아악!! "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A 씨를 향했다.
"저는 정말…! 정말 같이 가기 싫어요!!"
이내 A는 뒤를 돌아 달리며 허공에 외쳤다.
"아~~악!! 진짜 싫어!!"
정적이 흐르는 큰 길가,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도 100m 육상 선수처럼 전력 질주해 어둠 속으로 증발했다. 차가워진 아스팔트 위에서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B는 택시 문을 붙잡은 채 길가에 박힌 망부석처럼 한참을 서 있었다. 본인은 멜로 영화를 찍고 싶었겠지만, 관객인 A 씨에게 그것은 '공포의 택시 합승'이었을 뿐이다.
B는 회사에서의 웃음은 ‘호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예의’였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회사 생활은 가면무도회와 같다. 웃는 가면을 썼다고 해서 진짜 웃고 있는 건 아니다. 가면 뒤에서는 눈을 흘기고 있을 수도, 혐오의 시선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표정 없는 무표정이 가장 솔직한 고백일 때가 있다.
상냥함 속에 숨겨둔 서늘한 먹구름
C는 늘 상냥한 얼굴로 상사의 쉰내 나는 아재개그에 '물개 박수'를 치고, 번개 회식에도 "어머, 너무 좋아요!"를 외치던 전형적인 ‘착한 사원’이었다. 나는 그녀가 MBTI 검사를 하면 'E'가 100% 나올 거라 확신했다. 그녀의 내면세계를 구경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본모습은 영화 <주토피아>의 벨웨더와 같았다. 벨웨더는 겉으로는 작고 보드라운 양이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건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C 역시 작은 체구와 솜사탕 같은 말투 그 이면에는 거친 분노의 질주가 도사리고 있었다. 사내 메신저 속 C는 '키보드 워리어' 그 자체였다. 화면 너머에서 그녀의 손가락은 분주했다.
“아침부터 말 거는 거 실화냐?”
“개저씨들…”
“저능아 챌린지 중인가?”
그리고 메신저 창을 닫은 직후, 그녀는 해당 인물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넵넵! 파일 주시면 바로 확인해 드릴게요~ ^^"
그녀는 증오하는 이들 앞에서 단 1mg의 티도 내지 않고 철저히 상냥함을 연기했다. 화창한 날씨 같은 미소 아래, 언제든 번개를 내리칠 준비가 된 먹구름이 가득한 그 짜릿한 괴리감이 바로 C의 진짜 얼굴이었다.
누구도 그녀의 이중성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며,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숨만 쉬어도 유죄인 사람이 존재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역배우들에게도 국민 영웅에게도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사회이다.
그녀는 인사고과, 평판 조회 등 본인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위해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상냥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결국 C의 미소는 타인을 향한 배려가 아니라, 자신의 평온을 지켜내기 위해 치르는 가장 고요한 전쟁이었다.
가면 속의 심연을 스캔하지 마라
아직도 회사에서 누군가 웃어줬다고 해서 “나를 좋아하나?”, “내 편인가 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순진함을 넘어선 오만이다. 웃음은 가장 가성비가 좋은 방패다. 어색함을 감추고 싶을 때, 지루함을 가리고 싶을 때, 혹은 들끓는 혐오를 들키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그 방패를 꺼내 든다.
우리는 그저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공통의 화제가 필요하며, 월급을 받기 위해 말이 오가는 '계약 관계'일 뿐이다. 퇴근 후 당신 곁에 남는 것은 가족과 진짜 친구뿐이다.
회사에서 동료의 표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그 가면 속엔 당신이 감당 못 할 '심연'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