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개가 크게 짖는 법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후배들이 내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선배님은 비유를 진짜 잘하세요.”
남편은 한술 더 떠 나를 ‘비유의 신’, 줄여서 ‘비신’ 또는 '비유신'이라 부른다. 칭찬이라지만 언짢은 그 표현을 들으면 나는 장난스럽게 그에게 레이저 눈빛으로 대응한다. 사실 나의 이런 언어 습관은 전적으로 엄마의 유산이다.
충청도 토박이인 엄마의 말은 느릿하고 온화하다. 대화의 무게는 가볍지만, 그 속에 담긴 통찰은 마음 깊은 곳에 닻을 내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나와 언니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무례한 사람을 대하는 법,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법을 체득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회사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황할 때가 있었다.
겁먹은 치와와가 짖기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옆 팀 부장님이 대표 앞에서 호된 질책을 받더니, 갑자기 애먼 나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네가 언제부터 공유를 했어!! 어??!!”
서류 뭉치를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사무실 층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음… 한 3개월 전부터요. 매일 메일 드렸습니다.”
그 대답은 기름이 되어 그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오늘도 했어?? 바뀌면 바뀐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네, 변경 사항 메일 드렸고 오늘도 아침 일찍 전달해 드렸습니다.”
“야!! 그럼 네가 잘못이 없다는 거야??”
“흠… 네. 사실 무슨 잘못을 말씀하시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돼서요.”
결국 그는 씩씩거리다 주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겉으로는 침착을 유지했지만, 속에서는 뜨거운 석탄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건 내 이름이 오염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저급한 소동에 휘말려 내 이름 석 자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 그 비상식적인 소란 탓에 나라는 사람이 왜곡된 평가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억누르려 해도 계속 울컥울컥 올라왔다. 잘못한 게 없어도, 소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공들여 쌓은 평판에 생채기가 날까 봐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쏟아냈다.
겁 많은 개가 크게 짖는 법
엄마는 특유의 느릿한 억양으로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아가, 원래 겁 많은 개가 크게 짖는 법이야.”
엄마는 공원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몰티즈나 치와와를 떠올리게 하셨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빨을 드러내고 깡깡거리며 악을 쓰는 그 작은 존재들 말이다.
“진짜 큰 개는 짖지도 않아. 이빨 한 번 보여주면 다들 귀 내리고 꼬리 감추는 법이지. 그 부장은 지금 겁이 잔뜩 난 거야. 우리 딸은 그릇이 크니까, 그냥 치와와가 무서워서 깡깡댄다 생각하고 털어버려.”
엄마의 비유는 언제나 명중이었다. 실제로 그는 업무 역량이 뛰어나지도, 카리스마가 있지도 않았다. 그저 운이 좋거나 정무적인 감각으로 그 자리에 오른 이들의 전형이었다. 그는 아마 스스로를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위치가 늘 위태롭다는 것을.
리드줄은 내가 쥐고 있다
분노는 때로 가장 비겁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그에게 대표의 질책은 생존이 걸린 거대한 공포였고, 그 겁먹은 얼굴을 감추기 위해 그는 나라는 약한 고리를 찾아 비겁하게 짖어댔을 뿐이다.
“길을 가다 보면 작은 개도 보고 소도 보고 닭도 보는 거야. 예쁜 꽃이나 멋진 풍경 만날 땐 멈춰 서도 되지만, 작은 개 한 마리가 깡깡댄다고 손발이 얼어서 길을 못 가면 되겠니? 내일 만나면 그냥 치와와 본 것처럼 평소처럼 대해.”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뜨거운 석탄이 눈 녹듯 식었다. 엄마는 내일도 사무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그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에 지레 겁먹은 내 속내를 꿰뚫어 보셨고, 그 불편함을 정면으로 돌파할 비책을 전해주신 셈이다.
다음 날, 나는 그에게 평소보다 더 환하게 인사를 건넸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그는 당황한 듯 여전히 나를 불편해하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건 이제 그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개소리는 통역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비상식적으로 고함을 친다면, 그건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겁먹은 개’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적에 대한 압박, 상사의 눈치, 평판에 대한 불안… 그 뒤에 숨은 공포를 읽어내는 순간, 상대의 고함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불안 지점을 포착하면, 당신은 상황을 조율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리드줄을 손에 쥐게 된다. 날 선 언어에 함께 흔들리는 대신, '저 사람이 지금 무엇을 두려워해서 저토록 악을 쓰는가'를 관찰자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것. 그 서늘한 객관성이야말로 상대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리드줄이다.
상대가 깡깡대며 바닥을 구를 때, 당신이 평온한 얼굴로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줄의 끝은 당신이 쥐고 있는 셈이다.
결국 주도권은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흐르기 마련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짖는 개가 아니라, 내가 걷고 있는 길과 나 자신이다.
개소리는 이해할 필요도 통역할 가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