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망가뜨리는 사람
몇 달 전, 이직에 성공한 친구 A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새 회사에서 잘 지내냐고 물어보려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마치 장마전선이 머리 위에 걸린 듯한 무거운 공기였다.
“왜 이렇게 목소리가 축 처졌어?”
“아… 그냥… 회사가 좀… 어렵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순히 ‘새 직장 적응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회사에는… 치명적인 독초가 있었다.
곰 같은 신입과 뱀 같은 선임
A는 곰 같은 사람이다. 우직하고 성실하고, 말하는 것보다 듣는 쪽이 편한 타입이다. 반면 그의 선임은 주변 부서에서 '일 잘한다'는 소문을 등에 업고, 뱀처럼 상급자를 챙기고 주변에 말을 퍼뜨리는 데 능했다.
문제는 그 뱀의 관심사가 ‘업무’가 아니라 타인의 ‘꼬투리 잡기’였다는 점이다.
그녀는 글꼴이 왜 이렇냐, 폰트는 왜 이걸 쓰냐, 멀쩡한 문장의 영문법이 틀렸다, 줄 간격이 마음에 안 든다 등등. 내용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사내 문서 스타일링 심사위원’처럼 굴었다.
그녀의 심사 덕분에 A는 본질적인 업무 대신 잔무에 시달렸고, 업무 속도가 늦어지면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그 ‘속도’를 질책했다.
악순환이라기보다 그냥 ‘악(惡)’ 자체였다.
진짜 기술은 회의실에서 발휘됐다. 회의 중 본인이 시켜서 한 일이 지적이라도 받으면, 그녀는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데 선수였다.
“A 씨가 제 설명을 조금 오해한 모양이네요. 제가 나중에 따로 잘 가르쳐주겠습니다.”
팀장 앞에서 A를 졸지에 ‘말귀 못 알아듣는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그 기술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가스라이팅의 교과서 "이건 다 너를 위한 거야"
나르시시스트인 그녀는 세상 자신감 넘치는 척했지만, 실상은 비판에 극도로 취약했다.
반대되는 의견을 내거나 조금만 지적받아도 눈빛이 돌변했다. 과하게 방어적으로 굴거나 목소리를 높이며 공격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언제나 "이건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을 방패처럼 내세웠다.
가스라이팅의 교과서가 있다면 첫 장에 적혀 있을 법한 그 문장을 꺼내 들며, 그녀는 간단한 업무 메일조차 본인 승인 없이는 보내지 못하게 A의 손발을 묶어버렸다. 그날도 그녀는 A의 자존감을 갉아먹기 위해 특유의 ‘위하는 척’ 입술을 뗐다.
“A 씨, 요즘 너에 대해 말이 많아. 인사팀에서 너 일 못 한다고 욕하는 거, 내가 뒤에서 방어하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만. 너 엔지니어잖아. 인사팀이 엔지니어의 실무 능력을 어떻게 판단해?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라 웬만해서는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그리고 인사팀은 현업 부서의 실무 평가에 직접 관여하거나 함부로 해고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곳이 아니야.”
“… 그러네?”
“인사팀 귀에 그런 말이 들어갔다는 건, 누군가 일부러 인사팀에 ‘소스’를 던졌다는 뜻이야. 너를 방어한다던 그 선임이, 사실은 네 평판에 불을 지르고 있는 범인 아니야?”
흩어진 퍼즐과 잔인한 진실
A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제야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잔인할 정도로 완벽하게 맞물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A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모든 일에 검토와 승인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채웠고, 밖으로는 A를 무능한 사람으로 포장해 자신만이 그를 통제할 수 있는 ‘구원자’인 척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준다던 사람이, 사실은 나를 가장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흩어진 퍼즐이 맞춰지고 나서야 보였다. 그녀의 패턴은 처음부터 일관됐다.
나르시시스트 선임의 패턴
잔실수를 과하게 지적한다
"다 너를 위해서"를 입에 달고 산다
회의실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책임을 교묘히 넘긴다
칭찬과 비난을 예측 불가능하게 반복한다 (길들이기)
구원자인 척하며 의존 관계를 만든다
문제를 제기하면 "네가 예민한 것, 네 잘못"으로 만든다
나르시시스트는 절대 ‘좋게 끝나는 법’이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그 사람, 나르시시스트야. 자기가 완벽해야 하고 남은 깎아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 그건 성격이 아니라 병이야. 대응의 정답은 단 하나, 차단 뿐이야.”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건 곰 같은 A에게 수능 만점보다 어려운 일이다. 아니, 사실 누구에게나 불가능에 가깝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좋게 대화로 풀자”는 희망은 독약이다. 그들은 당신이 등을 돌린 순간, 등 뒤에서 가장 화려한 헛소문을 만들어내는 재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과응보, 늪이 만든 가장 깊은 구덩이
A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본모습을 폭로하고 근무지 분리를 요청했다. 여전히 거짓을 만들어 주변에 퍼뜨리고 업무상 부딪히는 일이 있었지만, A는 그사이 단단해져 있었다.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고, 그 거리가 그를 버티게 했다. 이직을 준비한 A는 결국 몸값을 높여 더 큰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반년 후, 완벽한 '인과응보'의 소식이 들려왔다.
뱀 같은 그녀는 다른 팀의 유능한 팀장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밑천이 드러났고, 만회를 위해 부리던 이간질조차 정황이 들통나 사내에서 고립됐다. 하지만 진짜 하이라이트는 그다음이었다.
그녀가 새로 이직하려 이력서를 넣은 곳이, 하필이면 A가 보란 듯이 성공해 자리를 잡고 있는 대기업이었던 것이다. 인사팀의 레퍼런스 체크 과정에서 전 직장 동료였던 A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다. A는 그간의 모든 진실을 담아 '최악의 인물'이라는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본인이 휘두른 칼날이 결국 본인의 앞길을 끊어버린 셈이다.
A가 새 직장에서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녀는 여전히 전 직장에 발이 묶인 채 승진도 이직도 못한 고립된 섬이 되었다.
본인이 만든 늪에, 본인이 빠진 것이다.
당신의 길에 늪이 있다면
회사에서 나르시시스트를 만난 것 같다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가족이나 친구와 반드시 대화하길 바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늪이라고 느껴진다면 물리적 분리가 정답이다.
인간관계는 승부가 아니다. 내가 피했다고 해서 지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은 그저 당신이 가는 길에 놓여 있는 늪일 뿐이다. 늪을 무시하고 밟으면 빠진다.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승리다.
당신이 목표를 향해 걷고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단단한 길을 찾게 된다. 지금 구덩이에 빠져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라. 그들은 당신이 조금 더러워져도, 다쳐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다.
당신이 그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함께 걸어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