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예린 Sep 16. 2024

영원한 사랑은,

2024.04.28.


이팝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한다.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하얀 꽃을 피운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더는 벚나무가 이목을 끌지 않는, 늦봄에서 초여름을 향해가는 계절의 경계선이었다.


이팝나무를 생각할 때면 늘 그것의 존재를 처음 알려주었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생각난다. 어쩐지 쌀알을 닮은 모양의 꽃이라던 설명이 아직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 덕에 길을 지날 때 이팝나무를 보거든 네가 걔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봄날의 벚꽃보다 더 낭만적인 꽃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팝나무의 존재를 처음 인지했던 때로부터 8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기분을 타지 않는 것. 당신(You)을 사랑하는 일은 그런 것이라 했다. 당신을 신뢰하는 일도, 당신을 따르는 일도. 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인 것이다. 오늘 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내 체력이 고갈되었다고 해서 당신이 나를 등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만큼이나 빈번하게 깨우쳐야만 한다. 그것이 영원한 사랑을 몸소 보여준 당신을 향해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서만이라도 당신을 알아가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당신의 존재에 대해 유독 의구심이 드는 밤이라고 해도, 한때나마 내가 열정을 쏟아부으며 믿었던 당신이 오늘 내 곁에 함께하고 있을 당신과 다르지 않음을 믿는 것이.


이렇게 생각하니 너를 사랑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변하는 것은 나의 상황과 감정이지 네가 아니라는 것을, 너라는 존재가 그 크고 작은 변수들로 인해 내게 무의미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 없음을 거듭하여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영원한 사랑의 일부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사랑은 왜 육성으로 전달하기가 더 버거운 것인지. 혀끝에 맴도는 무수한 고백은 어째서 내뱉기에는 더 무거워 쉽게 꺼내놓지 못하는지. 말로만 논한다고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마음이 담긴 행동 하나는 또 얼마나 어렵던지. 네가 나의 이런 고뇌를 몰라준다고 원망하기 바쁘지만, 나 또한 당신의 실천적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음을. 그 우매함을 이제야 고백할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