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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린 Sep 17. 2024

사랑은 지는 법을 몰라서

우정도 사랑의 형태라면 우리도 사랑의 일종이었을까.


내가 알지 못하던 사이에 너와 마음 깊이 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던 것도 같다. 처음에는 그저 의문투성이에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는 웃음꽃을 피우다 봄비를 맞고 가라앉았다. 그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집중하던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의 마음을 완벽히 타자화했다. 마치 영화를 보듯이 그 꽃이 품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서,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꽃이 피던 마음의 계절을 사랑했다.


꽃비가 내리던 저녁에 너를 보냈다. 마음만 있다고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계절들이 지나갔다. 너를 지탱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만이었으니까. 사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은 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보낼 수 있었다.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랑 언저리에 있는 무언가라도 흉내 내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내딛는 걸음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 하나도 그렇게 어려웠다.


이기적인 마음을 전부 내려놓기로 다짐하고 나서는 수많은 것들을 흘려보내야 했다. 너라는 사람도, 너라는 시간도, 너라는 목소리와 부탁과 조언과 응원도. 그저 한 순간에 불과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내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너 하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당신(You)은 어떤 마음인 건지. 마음이 일치되지 않는 건 이렇게 속상한 일인데 당신은 어떻게 그저 한결같이. 같은 선상에서 함께해주었으면 한다고—그게 당신한테 정말 큰 의미가 있나. 나 하나 깨어있다고, 함께 싸운다고 달라질까. 당신은 왜 상대해 줄 가치도 없는 싸움을 할까. 그러다가 깨닫는 것이다. 사랑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어쩌면 당신은 함께하는 방향으로 나를 돌려세우고 싶은 것이 아닐까. 사랑이 희미해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자꾸만 두려운 마음이 앞서 무언가를 포기하고는 하니까. 함께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풍파를 같이 견디는 것보다 더 어려우니까.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다채로운 빛깔을 점점 잃어간다는 것. 당신은 그걸 바라보며 아파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 나 당신을 떠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포기가 되지 않았다. 당신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데, 내가 나를 포기할 재간이 없어. 내게는 이것이 생명의 운동성인 것이다. 미워하기보다 잘 지내길 바라고, 무너지기보다 아프지 않길 바라고, 절망하기보다 행복하길 바란다. 조금 느릴지라도, 너와 나 모두. 너의 시야가 좁아지지 않길, 네가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마음껏 느끼길, 그 기억들을 한가득 안고 살아가길, 그렇게 너의 세상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넓어지길 소망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다. 그러다 맞닥뜨리게 되는 벽이 너무 높아 삶이 미워지고, 때로는 무너지고, 그렇게 절망하여 쓰러지더라도 툭, 툭 털고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한다. 포기하지 않기를, 잘 살기를 바라. 이런 것도 당신을 닮은 마음일 수 있을까. 당신의 사랑에 비하면, 그 반의 반의 반도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사랑에 견줄 수 있는 것이었다면, 너를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정말 너를 사랑했던 것만 같다.


사랑은 아프고, 마음을 굳게 먹자고 다짐해도 계속해서 상처가 되고는 했다. 아플 것을 알아 두려워도 쉽게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너에게는 나를 떠날 자유가 있지만, 나는 너 없는 내일을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늘 너를 기다릴지 모를 일이다. 네가 끝내 나와 함께하기를 선택한다면 나는, 아마도 너의 넓어진 세상에 여전히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날아다닐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면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을 나도 아니다. 결국 당신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 탓에 나도 이것저것 포기가 잘 되지 않는다. 사랑은 그 모양이 어떠하든 나를 성장시켰으면 좋겠다. 마음을 주었던 대상은 끝까지 함께였으면 한다.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다해 오래 같이 있겠다는 약속이 반드시 살아있는 약속일 수 있기를 바란다.


감히 내 이해의 척도로 바라볼 때 이런 마음이 세상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과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다면, 끝끝내 사랑이 이기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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