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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아빠 Feb 22. 2024

약 오래 먹어도, 괜찮아요. 제발.

먹이라고 드린 약은 다 먹여줘요.

 소아과는 약을 쓰는 진료과다. 콧물도 기침도 가래도 설사도 구토도 변비도 일단은 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본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말들인지 모르겠는데 약이 독하네 뭐 하네 하면서 약을 끊거나 빼거나 하는 보호자들이 제법 많이 있다.


 그럴 거면 병원엔 왜 오시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은 꼭 다시 와서 아기가 낫질 않는다며 불만을 이야기한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약을 쓰는 의사인데 약을 안 먹고 와서 왜 안 낫는지 물어보면. 난.. 할 말이 없지. 그럼 약을 좀 바꿔서 다시 지어드릴게요, 이번엔 잘 먹여보세요.라고 진료를 마쳐야 한다.


 진짜 약이 독하네 뭐네 하는 말 만들어낸 누군가를 찾아서 대체 뭐 하는 인간이시냐고 묻고 싶다. 충분히 치료가 돼야 하는데 조금 좋아지는 듯싶으면 그냥 약을 끊고 다시 아파서 오고를 반복하며 아기도 지치고 보호자도 지치고 의사도 지친다.


 소아에서 쓸 수 있는 약은 거의 정해져 있고, 연구 윤리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신약이 개발이 되거나 임상실험을 하거나 그런 분야가 아니라, 매번 같은 약, 비슷한 약을 쓸 수밖에 없고, 그 약들은 수십 년간 안정성이 확인된 약들이다. 소아에게는 그렇게 위험성이 적은 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독한 약이라는 그 믿음이 충분하게 치료해야 하는 질환들의 경과 마저 악화시키고 있는 케이스를 보다 보면 정말 답답하다.


 필요 없는 약, 아기에게 해가 되는 약은 적어도 소아과 의사라면 절대 쓰지 않으니 지어준 약은 제발 다 먹이고 다시 오셔서 낫네 낫지 않네 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약이 독하단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은 내 앞엔 나타나지 마시길. 화를 많이 낼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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