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아과아빠 Feb 20. 2024

뽀로로비타민, 빛타민

너희들에게 이건 무슨 의미일까

 소아과 진료는 보통 3단계로 이뤄진다. 시작하기 전부터 울고 있는 아기를 안거나 업거나 끌고 들어오는 보호자. 공포에 질린 아기들. 겨우 의자에 앉히거나 보호자 품에 안겨 착석. 보통 여기까지가 1단계다. 아기들은 온갖 공포와 걱정 혹은 분노가 뒤엉킨 표정으로 지옥의 문을 통과해 의자 위에 포박된 가녀린 영혼이다. 나는 그저 그들에게 고통을 선사하고 공포를 일으키는 사탄, 악마, 혹은 뭐 그 비슷한 무엇인가 쯤으로 그들의 눈에 보이는 듯하다.


 본격적인 진료는 그 뒤 이어지는 2단계, 시련의 시간. 아가들은 청진부터 시작하는 시련을 하나씩 견뎌야 한다. 사실 청진은 통증을 전혀 일으키지 않지만, 뒤이어 이어질 단계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아가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달래려 해 봐도 이미 공포에 사로잡힌 아가들은 진정되기 힘들다. 이어지는 목구멍 귓구멍 귀 파기 코파기는 아가들에겐 거의 고문인 듯, 정말 뭔가 무너질 듯이 울어댄다. 가끔 내 귀를 멀게 만들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아기들이 쏘아대는 초음파에 귀가 먹먹해져 잠시 이명이 들리거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긴 하지만, 뭐 괜찮다. 그게 내 일상이니까. 다음 환자를 조금 늦게 부르면 된다. 어차피 이명이 잦아들지 않으면 진료는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진단을 위한 신체 검진까지가 시련의 2단계이다.


 그리고 대망의 3단계,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 주워지는 보상의 시간이다. 드디어 주인공의 등장. 나는 뽀로로비타민을 쥐어주며 악마의 탈을 벗고 선한 의사 선생님으로 돌아온다. 찡끗 웃어주거나 빠이빠이도 해줄 수 있는 존재. 가끔은 다가와 손도 잡아주고 한번 폭 안겼다 갈 수도 있는 그런 존재. 뽀로로비타민 하나로, 아니 두세 개쯤으로 나는 몇 단계 신분을 상승을 노려볼 수 있다. 그 순간, 더 이상 뽀로로비타민은 그냥 단순한 비타민이 아니게 된다.


 뽀로로 비타민, 이것은 너희들에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시련뒤에 얻어지는 보상? 인생의 쓴맛 뒤에 느낄 수 있는 달콤함? 아니면 비타민을 가장한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그냥 설탕덩어리? 심지어 맛도 같은데 좋아하는 캐릭터로만 받아가는 아가들도 있다. 아무래도 맛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아가들은 그렇게 힘들게 받아가고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아픔과 공포가 잊힐 때까지 그냥 나를 지켜주는 친구들일까?


진짜 아가들이 생각하는 뽀로로비타민의 의미는 아마 나는 평생 알지 못할 것 같다. 다만, 힘든 진료 후에 아가들의 울음을 그쳐 주고, 미소를 한번 보게 해주는 뽀로로비타민은 소아과의사인 나에게도, 그저 빛타민. 언제나 그 정도로 힘든 기억을 잊어 주고 웃음을 보여주길 바라, 아가들.


 너무 자주 많이 아프지 말고, 선생님은 가끔만 보자.

이전 02화 한 달 넘게 약을 먹는데 낫질 않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