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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과아빠 Feb 13. 2024

죄인, 엄마.

아픈 아기의 엄마는 항상 죄인이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할머니 품엔 해열 패치를 붙인 아기가 안겨있다. 세 걸음쯤 뒤에서 따라 들어오는 엄마의 눈은 누가 봐도 잠을 이루지 못해 어두운 빛을 띠고 있다.


 아기를 진찰하는 동안 엄마는 안절부절못하고 할머니는 '우리 아기'가 열이 언제부터 얼마나 나고 기침을 얼마나 오래 했고, 토하고, 하는 일대기를 두 달 전 걸려서 다 나은지 한 달도 넘은 감기 이야기부터 풀어놓고 있었다.


할머니 말에서 '우리 아기'가 아팠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깨가 움츠려드는 엄마. 그런 엄마를 곁눈질로 쳐다보는 할머니. 그리고 해맑은 '우리 아기'.


결과는 뭐 감기였고, 약을 지어주며 아기의 상태와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데, 할머니가 불쑥 질문은 던졌다.


' 우리 아기가 왜 이렇게 자주 아플까요?'


'우리 아기'는 그냥 아플 수 있는 건데. 바이러스 감염을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그런데 누군가 책임자를 찾듯, 할머니는 질문을 이어갔고, 그 끝엔 엄마가 있었어.


' 네가 애를 이렇게 키우니 애가 아프지.'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구나. 아차 싶었다. 처음부터 그냥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죠.라고 했어야 했다. 후회는 짧아야 했어.


' 어머니, 아기 앞에서 부모 욕하면 안 되죠. 두 분 문제는 두 분이 해결하시고 애기 앞에서 부모 비난 하지 마세요. 아기 앞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순간 민망해하던 할머니는 재빨리 진료실 밖으로 ' 우리 아기'를 데리고 나갔고, 축 처진 어깨의 엄마는 다시 힘없는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 나갔어.


아이가 아픈 것이 왜 자꾸 누군가의 잘못이 되어야 하지? 그것도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그 아이의 건강을 가장 걱정하는 엄마의 잘못이. 아이가 아픈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냥 아프면서 자라는 거니까. 그걸 이겨 내는 것도 성장이니까. 그런데 꼭 누군가를 죄인을 만드는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그래야 자기 맘이 편한 것인지, 맘에 안 드는 사람을 그렇게라도 비난하고 싶은 것인지는 겉으로만 보고 알 수는 없다. 그들의 사정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만 아이 앞에서 비난받은 엄마를 본 아이는 바르게 크기 힘들 테니까. 한 마디를 얹었을 뿐이었다.


세상에 그런 엄마는 없다. 아이가 아프길 바라고 잘못되기를 바라는 엄마. 아기가 아픈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엄마,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아이에겐 우주, 혹은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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