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 GPU 시대가 온다면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지난주, OpenAI의 발표를 보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엔비디아와 1000억 달러,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4000억 달러, 코어위브 224억 달러. 숫자들이 현실감 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그렉 브록먼 사장의 말에 손이 멈췄다.


"지구상 모든 사람이 전용 GPU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약 100억 개의 GPU가 필요할 것입니다."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1인 1 GPU. 1인 1 PC, 1인 1 스마트폰을 지나 이제 1인 1 GPU의 시대가 온다는 말인가.


무모함과 확신 사이


샘 알트먼은 이미 8월에 예고했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건 너무 말도 안 된다'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의 목소리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이미 그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사라 프라이어 CFO는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터넷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너무 많이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을 보세요."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전용선 인프라에 쏟아붓는 투자를 보며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많은 대역폭이 필요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YouTube가 나오고, 넷플릭스가 등장하고, 줌으로 회의를 하는 지금, 그 우려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OpenAI는 그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순환하는 돈의 그림자


하지만 모든 이야기엔 이면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엔비디아-OpenAI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엔비디아가 OpenAI에 투자한다. OpenAI는 그 돈으로 엔비디아의 GPU를 산다. 엔비디아의 매출이 오르고, 다시 투자한다. 돈이 순환한다. 실제 수익이 창출되지 않아도 숫자는 커진다.


2000년대 초반이 떠올랐다. 시스코, 루슨트, 노텔. 그들도 인터넷 스타트업들에 후한 조건으로 투자하고 장비를 팔았다. 닷컴 버블이 터지기 전까지는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아니면 이번엔 다른가.


한국에서 본 풍경


서울의 어느 회의실. 누군가 물었다. "우리도 수천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는 건가요?"


침묵이 흘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OpenAI가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쯤 서 있어야 하는가.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국가 R&D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평가하는 일을 해왔다. PMP 자격을 따고 Agile 방법론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큰 프로젝트일수록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각자가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OpenAI를 따라잡을 순 없다. 하지만 우리만의 길을 만들 수는 있다.


정부가 깔아야 할 길


정부는 민간이 갈 수 없는 곳에 먼저 가야 한다. 위험이 크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곳.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를 생각해본다. 대규모 GPU 클러스터를 국가 자산으로 만드는 것.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저렴하게 쓸 수 있게 하는 것.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운영하는 슈퍼컴퓨팅 센터처럼.


전력도 마찬가지다. AI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기를 먹는다. 기가와트급 인프라라면 작은 도시 하나가 쓰는 전력량이다. 친환경 전력망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돌릴 수가 없다.


제도도 중요하다. 세제 혜택, 규제 완화, 표준 제정. 민간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것.


그리고 장기 기초연구. 에너지 효율적인 AI 알고리즘, 차세대 컴퓨팅 기술. 당장 돈이 되진 않지만, 10년 후를 위해 필요한 것들.


민간이 달려야 할 길


민간은 빨라야 한다. 정부가 깔아놓은 인프라 위에서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산업별로 특화된 AI를 만든다. 제조, 금융, 의료, 교육. 각 분야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해결하는 AI. 범용 AI로는 닿을 수 없는 곳.


글로벌 시장도 봐야 한다. 한국 시장만으로는 투자를 회수할 수 없다. 처음부터 세계를 무대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빠르게 시도하고,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것. Agile의 정신.


함께 만드는 그림


혼자서는 갈 수 없다. 정부와 민간이 손을 잡아야 한다.


첫 번째 그림을 그려본다. 국가 AI 컴퓨팅 바우처. 정부가 GPU 인프라를 만들고, 기업들에게 바우처를 준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규모 AI를 개발할 수 있게. 성공하면 세금으로 돌아오고, 그 돈으로 다시 인프라를 키운다. 선순환.


두 번째 그림. 앵커 테넌트 전략. 정부가 공공 부문에서 AI 수요를 만든다. 행정, 국방, 의료. 확실한 수요가 있으면 민간 투자의 리스크가 줄어든다. 대기업이 플랫폼을 만들고, 스타트업이 특화 솔루션을 만든다.


세 번째 그림. 산업 클러스터. 판교나 평택에 반도체 AI 클러스터를 만든다. 정부가 인프라를, 삼성과 SK가 플랫폼을, 중소기업이 솔루션을, 대학이 인재를.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와 AI가 만나는 곳.


우리만의 길


OpenAI처럼 수천억 달러를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강점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여기에 AI를 결합하면 무엇이 나올까. 전력 제약이라는 약점을 에너지 효율 AI라는 강점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정부-민간-학계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장점이다. 빠른 의사결정, 빠른 실행.


그리고 K-컬처. 엔터테인먼트와 게임 산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AI와 만나게 하면 어떨까.


끝나지 않은 이야기


마크 저커버그는 말했다. "초지능 개발에서 뒤처지는 것이 최대 위험입니다. 수천억 달러를 낭비하는 위험도 감수하겠습니다."


무모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심이다. 미래를 확신하고, 지금 행동하고 있다.


나는 프로젝트 관리를 가르치면서 늘 강조한다. What(무엇을), How(어떻게), Why(왜)가 명확해야 한다고. 정부는 What을 제시하고, 민간은 How를 찾고, 모두가 Why를 공유해야 한다고.


OpenAI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기술 투자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현실로 만들려는 의지다.


1인 1 GPU 시대. 그게 정말 올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믿고 움직이는 한, 세상은 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한국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준비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현철
AI R&D 전략플래너
기계공학 박사 | PMP | Agile Expert


AI타임스 기사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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