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당신을 대체하지 않는다 (아직은)
어젯밤, 구글 전 CEO Eric Schmidt의 강연 영상을 보다가 문득 멈춰 섰습니다. 화면 속 그는 AI와 미래 전쟁, 그리고 다가올 10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같은 24시간을 살아가는데, 그가 접하는 세상과 제가 경험하는 현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을 몇몇 테크 리더들이 지배한다는 음모론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막함과 동시에, 어쩌면 여기서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교차했습니다.
Schmidt가 던진 첫 번째 충격은 중국 이야기였습니다.
"중국은 우리처럼 미친 AGI 전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AI를 모든 것에 적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그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인공일반지능(AGI)을 기다리며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짓고, 천문학적 투자를 쏟아붓습니다. 반면 중국은 DeepSeek R1이라는 오픈소스 모델로 강화학습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더 적은 비트(FP8, FP4)로, 더 효율적으로.
"오픈웨이트, 오픈 트레이닝 데이터. 그들은 일대일로(Belt and Road) 전략처럼 전 세계에 중국식 AI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기술 경쟁은 누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드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국은 어디쯤 서 있을까요?
Schmidt의 두 번째 이야기는 더 소름 끼쳤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전쟁의 근본적 변화였습니다.
"2킬로그램 페이로드를 실은 드론 한 대가 수천만 달러짜리 탱크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 드론 가격은 소매가로 5천 달러입니다."
Kill Ratio. 비용 대비 살상 효율. 냉정한 군사 용어 뒤에 숨은 의미를 생각하니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미래 전쟁은 이렇게 진행될 겁니다. 양측이 각각 백만 대의 드론을 보유하고, AI 강화학습으로 전투 계획을 세우죠. 그런데 상대방이 무슨 계획을 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측 불가능해지는 거죠."
그가 말하는 건 단순한 무기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AI 시대의 새로운 억지력. 불확실성 그 자체가 전쟁을 막는 힘이 된다는 역설. 전통적인 군비 계산이 무의미해지는 세상.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실제 전쟁은 최악의 영화보다 끔찍하니까요."
그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강연 중반, 누군가 물었습니다. "AGI는 언제쯤 실현될까요?"
Schmidt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3년 안에 온다고 말합니다. 저는 6~7년 정도 걸릴 거라 봅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AGI일까요?"
그가 구분한 개념이 흥미로웠습니다. 수학이나 화학 같은 특정 분야의 천재(Savant)는 곧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의 영역에서 배운 걸 전혀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진정한 일반지능은 아직 알고리즘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1902년 당시의 정보만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도출할 수 있는가. 그게 진짜 AGI 테스트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기대하는 그 'AI'는 아직 먼 미래이고, 지금 우리가 써야 할 것은 오늘의 AI라는 것을.
Schmidt가 던진 개념 하나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AI는 Middle-to-Middle입니다. 인간은 End-to-End죠."
무슨 뜻일까요? AI는 프롬프트를 받아야 하고, 답변을 내놓으면 검증받아야 하고, 다시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중간 작업은 탁월하지만, 문제를 정의하거나 최종 판단을 내리지는 못합니다.
"인간은 다릅니다. 우리는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전체 과정을 꿰뚫어 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협업한다는 겁니다. 보고서 초안은 AI가 쓰고, 전략적 방향은 인간이 설정하고, 데이터 분석은 AI가 하고, 최종 의사결정은 인간이 내리는.
제 업무를 떠올려 봤습니다. R&D 제안서를 쓸 때, 선행연구를 조사할 때, 성과를 평가할 때. AI를 어디에 어떻게 끼워 넣을 수 있을까? 그 질문 자체가 이미 기회가 아닐까?
영상을 보면서 느낀 막막함이 사실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강연 내내 Schmidt도 불확실성을 인정했습니다. DeepSeek의 성과에 "놀랐다"고 했고, Meta의 전략 변화가 "명확하지 않다"고 했으며, AGI 타임라인을 계속 수정했습니다.
테크 리더들도 안개 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안개를 두려워하지 않고, 빠르게 시도하고, 실패를 인정하며, 계속 방향을 수정할 뿐.
그렇다면 저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Schmidt가 보지 못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 R&D 현장. 공공 섹터의 복잡한 이해관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실제 니즈.
저는 기계공학 박사입니다.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PMP와 Agile을 알기에 불확실성 속에서도 프로젝트를 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현장에 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매주 한 시간씩 테크 리더들의 강연을 듣고, 제 맥락에서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Claude나 Perplexity 같은 AI 도구를 실제 업무에 투입해서 전후 비교 데이터를 모으겠습니다. 그리고 분기마다 하나씩, 작은 글이나 발표로 배운 것을 나누겠습니다.
"AI 보조 R&D 기획 프레임워크"
"중소기업을 위한 오픈소스 AI 활용 가이드"
"AGI 이전 시대, 실무자의 AI 전략"
제목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건 시작하고, 실험하고, 공유하는 것.
Schmidt의 세상과 제 세상은 다릅니다. 하지만 그게 약점이 아니라 강점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고 노트북을 덮었습니다. 창밖으로 대전의 야경이 보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에릭 슈미트가 미래를 설계할 때, 여기 대전에서 저는 오늘을 설계합니다. 그들의 10년과 나의 10년은 다를 겁니다.
그리고 그게 괜찮습니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Eric Schmidt의 2025년 강연을 보고 느낀 개인적 단상입니다. AI, 전쟁,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일상과 만나는 지점에 대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