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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몬 Jun 12. 2021

에세이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

<북리뷰 4>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저자 이연실은 15년 차 에세이 편집자이며 출판사 <문학동네> 편집팀장이다. 대학 4학년이던 2007년 <문학동네>에 입사해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김이나의 <김이나 작사법> 등 베스트셀러를 만든 작가다.


이 책은 에세이 기획편집자가 팔리는  만들기 위해 책의 구석구석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며 책을 만들어가는 열정의 분투기이다. 글 쓰는 이들에게 편집자의 중요성을 뇌리에 콱 박아주는 책이다.

책을 시장으로 내보내는 것도 편집자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이들은 이 책을 읽고 편집자의 생각과 역할과 일하는 방식을 제대로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거기다 저자처럼 작전 파일과 터트릴 뇌관을 제 때 빵~~ 해주는 열성적인 에세이 편집기획자를 만나면 에세이가 더욱 환한 빛을 볼 수 있다.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에세이는 책이 될만한 인생 스토리와 핵심 맥락이 있어야 하며 유명한 사람이 쓴다고 좋은 에세이가 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저자는 글을 써 본 적은 없지만 삶 자체가 책 보다 아름다운 사람, 자신의 업과 삶에 허영이나 자만도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달인이나 대가의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어 한다. 그들의 오늘을 꿰는 강력한 콘셉트와 핵심 키워드가 반드시 있다고 한다.  


'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준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에세이는 유일한 경험담이며 간절한 인생 스토리다.' (13쪽)


' 에세이는 책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진입 장벽이 낮다. 작가나 학자의 길을 미처 생각  못했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첫 책을 쓴다고 할 때, 그 책의 장르는 에세이가 될 확률이 높다.' (22쪽)




저자는 끊임없이 '팔리는 에세이',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를 강조한다. 에세이의 운명은 글에 대한 안목을 가진 편집자와 마케팅 감각을 지닌 편집자의 역량에 달렸기에 편집자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차례, 소제목, 교정과 감수, 본문 디자인, 표지 디자인, 표지 카피, 띠지 문안, 보도자료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최선을 다한다. 편집자는 작가의 원고를 맡는 순간부터 최소 6개월에서 최대 수년간은 그 책 만드는 일에 몰입한다. 편집자는 그 기간 동안 작가와 수시로 만나거나 의견 조율하며 수많은 교정과 감수를 거치고, 디자이너와 시안 만드는데 머리를 싸매고, 인쇄부수를 늘리기 위해 마케터와 싸우며, 최종 인쇄의 성공까지 오롯이 자신의 책임으로 책을 만들어 시장으로 내보내야 한다. 거기다 책의 판매 결과도 일부는 편집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저자의 열정과 집념이 쌓여 어느 해에 노벨문학상 수상작품과 연결된다.

저자는 번역가와 함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에세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약 2년간의 기획, 번역 및 편집을 거쳐 2천 부를 첫 출판했으나 시장 반응은 보통이었다. 저자는 노벨문학상 발표 다음날엔 해외 출장을 갈 계획이었다. 2015년 노벨상 수상작 발표 날이 오고 저자는 출판사 티브이 앞에 앉아있다가 수상작 발표를 듣고 감탄의 비명을 지른다. 즉시 추가 인쇄에 들어가기 위해 1쇄의 오자를 찾아내며 행복에 겨워하다 뜬 눈으로 다음 날 비행기에 오른다. 편집자로서 자신이 기획한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건 일생의 감동이다. 국내에 출판 편집상이 있다면 2015년 수상자는 저자 이리라.  

'내가 최근에 기획하고 편집한 책이 노벨문학상을 탈 줄은 몰랐다.'(P.128)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저자의 열정과 에너지에 넋을 놓을지도 모른다. 설마 저렇게까지 미친 듯이 일하는 편집자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 책이 끝날 이면 글 쓰는 이들은 편집자가 정말 이 정도로 슈퍼 갑이면 작가는 완전 을인가란 의문이 든다. 그렇지만은 않다. 반대로 편집자는 작가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런 편집자의 어려움을 위로하는 한 소설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토록 훌륭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과 인간과 편집자의 마음을 몰라주나. (중략)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는 이런 멋진 말이 있지.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 그래서 나도 책을 낼 때는 언제나 이런 마음 가짐으로 임해.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버림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편집자에게 버림받으면 끝장이다! " (P.165~P.166)


문고판 175쪽이라 가볍게 보이는 책이지만 에세이 편집자에게 버림받지 않도록 제대로 짚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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