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는 작가 <위화>가 비참했던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광란의 문화 대혁명을 거치며 피를 팔아 근근이 가족을 지켜온 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쓴 소설이다.
작가는 1960년 중국 항저우에서 출생했으며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1983)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장편소설 <인생>(1993)은 영화화되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허삼관 매혈기>(1996)는 출간 후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렸으며, 세계 문단의 찬사와 함께 그를 중국의 대표 작가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 초판 이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으며 영화도 나왔다.
허삼관은 난세를 살아온 중국인의 자화상이다. 가진 것 없고 살아갈 길 막막한 허삼관은, 피를 팔 수 있는 성인이 된 후부터 피를 팔 수 없는 늙은이가 될 때까지 역경 속에서 오로지 생존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 생존 방식은 가난과 수탈과 정치적 핍박에 대항하지 않고 위트와 해학으로 견디며 더 나은 세상이 올 때까지 살아남는 것. 허삼관과 가족들은 20년간 죽을 고비를 피와 맞바꾸며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 올 때까지 인내한다. 허삼관이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게 되어 가족 생계가 막막할 즈음에 문화 대혁명이 끝나고 허삼관과 허옥란은 둘이 좋아하는 음식인 '황주와 볶은 돼지 간'을 먹으로 손잡고 간다.
이 소설은 매혈기란 지저분한 듯한 제목과 달리, 중국 인민 4,000만 명을 굶어 죽게 한 대약진운동과 1960대 광란의 문화 대혁명을 모질게 살아온 작가가, 허삼관과 그 가족이 공포의 혁명 현장을 살아
온 얘기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이 책을 잡으면 울다 웃다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된다. 허삼관과 허옥란의 사생활에 분노, 안타까움에 탄식하다가도 익살스러운 그의 말에 빙긋 웃음이 나오는 재미도 있다. 허삼관은 아내가 결혼 전 애인과 바람피워 일락이를 낳은 것을 알고 맞바람을 피우기도 했다. 아내는
혼전 임신이 동네에 알려져 인민재판에 끌려가 폭행과 온갖 수모를 겪는다. 이때 허삼관은 용기 있게 나서서 슬기롭게 아내를 구한다. 부패한 공산당 생산 대장에게는 피 판 돈을 바쳐 자식들을 안전한 생산부대로 배치받게 한다. 소설은 전편을 통해 혼란과 폭력, 불신과 배반, 분노와 시련, 좌절과 눈물, 부패와 착취가 넘쳐나지만 허삼관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대항하지 않고 피를 팔고 익살과 해학을 터트리며 고난을 헤쳐간다. 작가는 고난이 해학과 위트의 대상이 되면 고난 속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 준다.
생사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허삼관은 허옥란 아버지를 설득하여 하소용과 허옥란이 결혼 못 하게 하고 피를 판 돈으로 허옥란과 결혼한다. 피는 건강해야 팔 수 있으므로 피 파는 것은 건강의 상징이며 피를 팔면 월급보다 큰돈을 만질 수 있다. 한번 피를 팔면 45일 간 보양을 한 후 다시 팔 수 있다.
'우리가 판 건 힘이라고..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P.31)
허삼관은 허옥란과의 사이에서 일락, 이락, 삼락을 낳는다. 그러나 첫째 아이 일락은 아내의 전 남자 친구 하소용의 아들인 것을 알고 아내 허옥란을 때리고, 일락이를 집에서 내쫓으려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의 구박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대들지 않고 견딘다. 그런 일락이는, 동생 삼락이 가 친구에게 맞고 오자 복수하려고 삼락 이를 때린 대장장이 방 씨 아들을 뾰족한 돌로 머리를 찍어 사경을 헤매게 한다. 병원에 입원시키고 병원비를 내지 못해 허삼관은 가재도구를 모두 압류당하고 아내 허옥란 옆에서 엉엉 운다. 그 후 허삼관은 피를 팔아 병원비를 갚고 가재도구를 다시 찾는데 허옥란은 오히려 겉으로는 허삼관을 나무라지만 가재도구를 보며 안도를 한다.
'피는 조상에게서 물려받는 거라 피를 팔아서는 안돼요. 당신은 조상을 팔아먹은 거나 다름없어요'라며 눈물을 흘린다.(P.118)
허삼관은, 허옥란이 결혼하기 전에 하수용과 하룻밤 보냈고 아들인 일락이가 하수용의 자식인 것을 모르고 9년을 키운 게 못내 억울했는데 나중에 하수용이 트럭에 치여 죽고 만다. 아내 허옥란을 향한 복수심에서 그는 임분방과 정사를 벌이면서 죄의식은커녕 하수용의 죽음을 보며 이제 삶이 평등함을 느낀다. 아내에 대한 복수심도, 큰 아들 일락에 대한 미움도 어느 듯 사라져 간다. 일락의 생부 하소용이 죽은 후 허삼관은 동네 사람들 앞에서 계부인 자신의 얼굴과 몸에 칼질해서 피를 흘리며, 이제부터 일락이는 내 친자식이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그동안 차별했던 일락을 평등한 자식으로 대한다. 진짜 아버지가 된 허삼관은 일락이를 위해 피를 팔지만 바라는 게 없다. 자신이 삼촌한테 했던 것만큼만 바란다. 허삼관이 일락이 나이만 할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다른 남자와 도망친 후 삼촌이 자신을 돌봐 주었다. 그 삼촌이 돌아가실 때 허삼관은 눈물을 흘리며 삼촌을 보냈다.
'일락아 ,....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그냥 네가 나한테, 내가 삼촌한테 느꼈던 감정만큼 만 가져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P.205)
문화 대혁명을 맞아 일락과 이락은 붉은 깃발을 따라 농촌 생산대로 떠나고, 이락의 생산 부대 배치, 일락의 병 치료를 위해 허삼관은 죽음이 가까이 와 있음을 알면서도 피를 판 돈을 생산부 대장에게 주며 이락을 부탁한다. 허삼관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미워했던 일락이의 병원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상해까지 열흘 걸리게 가면서 피를 팔고 아들의 입원비를 마련한다.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에 목숨을 걸고 피를 팔아야 하는 가슴 저린 비장감을 준다. 작가는 왜 허삼관이 수 십 년을 목숨 걸고 피를 파는 일만 하게 할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지만, 그 당시 배운 거 없고 기술도 없는 농민은 소작농과 매혈 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중국의 모든 예술 문학도 당연히 공산당 통제하에 있으므로 이 소설이 발행(1996년)된 배경은, 1976년 문화 대혁명이 끝난 후 인민들의 비판이 높아져서 공산당으로서도 그 의미를 깎아내리며, 신격화된 마오의 위상도 하강시켜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었지 싶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갖은 힘을 다해 일하고 수모를 겪기도 하고 허삼관처럼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야 할 위기의 시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말은 안 하지만 가슴 한편에 응어리진 가족에의 미안함과 가슴 쓰림을 숨기고 살아간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허삼관은 피를 팔러 갈 수밖에 없다. 그에게 피는 돈이자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힘이다.
아이들도 성장한 어느 날 허삼관이 돼지 간과 황주를 먹기 위해 피를 팔러 갔다. 그동안은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았지만, 이번엔 자신을 위해 피를 파는 것이다. 그런데 피 장수 혈투는 죽은 피라 쓸모없다고 안 산다고 한다. 거기다 목숨을 내어 놓고 피를 팔아 키워놨더니 자식들은 아버지를 조롱하며 모두 자기가 잘나서 잘 사는 줄 안다. 허삼관이 한 일이라곤 목숨 걸고 피를 판 것 밖에 없지만.... 이제그 짓도 끝이다.
'허삼관은 울면서 가슴을 열어젖힌 채 길을 걸었다.... 그의 얼굴은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눈물이 그의 얼굴 위로 뒤엉킨 그물처럼 흘러내렸다..... 눈물은 그의 얼굴에 커다란 그물 하나를 짜 놓은 듯했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했는데, 이제는 내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니......,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P.325)
수십 년간 피를 팔고도 또다시 집에 일이 생기면 피를 팔지 못할까 봐 우는 허삼관, 허삼관에게 언제 돈 걱정 없던 해가 있었던가. 허삼관은 진저리를 치며 울면서 성안을 헤매 다녔다. 세 아들이 우는 아버지가 창피하다고 하자 허옥란이 허삼관의 역성을 들며 자식들을 나무라며 허삼관을 위로하고 손을 잡는다. '여보, 갑시다. 우리 돼지 간 볶음 먹으러 가자고요. 황주도 마시고. 이젠 가진 게 돈뿐 일데 뭘 그래요'(P.329).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안 사주는 혈투가 원망스럽다가도 허옥란이 위로하자 그녀의 따뜻함을 받아들여 자식들의 천대를 우스개로 눙친다.
'그런 걸 두고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고'(P.331).
허삼관이 피를 팔며 걸어온 길, 모든 아버지들은 저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간다. 작가는, 아버지들이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갈 때는, 위트와 해학을 지니고, 가끔 '황주도 마시고 돼지 간 볶음'도 먹어야 함을 일러 준다. '황주와 돼지 간 볶음' 은 흔한 먹거리이지만 보잘것없는 것 같은 작은 즐거움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 광풍 속에서 허삼관은 살아남았고 문화 대혁명도 끝났다. 곧 인민들의 삶도 평온한 일상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에서 평등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실 죽음 말고는 인생에서 평등한 것은 없지만 '피'와 '볶은 돼지 간과 황주' 도 누구나 가지는 평등함이 아닐까. 왠지 모르게 삶이 힘들어질 때 <허삼관매혈기>를 손에 들면, 연민과 눈물 속에서터지는 웃음을 만나고, 작은 위로와 희망의 씨앗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