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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라 Sep 12. 2023

일곱 번째 한 끼, 메밀김밥

일곱 번째 한 끼,

메밀김밥

어김없이 월요일이 찾아왔다.

주말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기저기 이동하느라 피곤했었는지 오늘은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나 버렸다.

내가 늦잠을 잘 동안 우리 딸은 안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도 누워 보고 거실에서 장난감 놀이도 하며 부지런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 오는 월요일.

늦잠을 잔 나는 급하게 아이의 등원 준비를 끝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사실 오늘은 아침부터 화가 많이 치밀어 올랐다.

첫 번째 이유는 불닭 소스.

어젯밤 쥐포를 구워 맥주를 마신 남편이 매운 불닭 소스를 정리해 두지 않아서

아침부터 아이가 불닭 소스를 만져 버렸다.

얼마 전 청양고추를 만졌던 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남편도 나도 너무 놀라 얼음팩으로 찜질을 시켜주고 손도 여러 번 닦아주었는데

그 사건을 잊었는지 매운 불닭 소스를 아무렇게나 방치해 둔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났다.

(물론 남편은 출근한 상태로 이 건에 대해 바가지는 긁지 않았다.)

두 번째 이유는 없어진 아이의 물병.

분명 어제 외출 후에 집에 가지고 돌아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아이의 물병이 보이질 않았다.

어린이집에 항상 물을 담아 보내기 때문에 오늘도 물을 담으려고 찾는데

어딜 봐도 보이지 않아 아침부터 씩 씩-

나는 기억력이 좋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성격으로 이렇게 매일 쓰는 물건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집에서 쓰는 물컵을 비닐봉지에 담아 보냈다.

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와 다시 한번 집안을 살펴봤는데도 물병이 보이지 않아 인터넷으로 다시 주문을 하고 소파에 가만히 앉았다.

적막 속에 앉아 조금 쉬다가 다시 일어나 주방을 향한다.

어수선한 싱크대 위를 정리하고는 냉장고를 열어 오이와 계란을 꺼낸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메밀 김밥.

사두었던 메밀소바의 유통기한이 지나버려 급하게 메밀면을 이용한 메뉴를 점심밥으로 택했다.

이런.

메밀면만 유통기한을 넘긴 게 아니었다.

계란도 유통기한이 이틀 지나 있었다.

남아있던 계란 3알을 모두 꺼내와 깨뜨려 잘 섞어두었다.

메밀 김밥에 들어갈 계란말이를 만들어야지.

대충 간을 하고는 예열해 둔 프라이팬에 계란 물을 부었다.

계란말이를 예쁘게 말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계란 물이 적절하게 익은 순간 살살 굴려 모양을 잡아줘야 한다.

프라이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열심히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모양이 나왔다.

계란말이 팬이 있었다면 더 완벽한 모양이었겠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결과물.

다음으로는 오이를 썰었다.

이 오이로 말할 것 같으면 이름부터 고급진 프랑스 오이.

이런 오이가 진짜로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빠가 지인에게 씨를 얻어 아빠의 밭에서 열심히 키우신 오이.

통통하고 동그란 모양의 오이가 제법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반을 갈라 보면 깜짝 놀라고 만다.

오이의 살보다 씨가 더 많아서!

칼로 씨를 도려내니 절반 이상이 줄었다. 그래도 김밥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었다.

마지막으로 메밀면을 삶았다.

삶아진 메밀면은 찬물로 잘 헹궈 들기름과 쯔유, 소금으로 밑간을 해주었다.

김밥김을 펼쳐놓고 그 위에 메밀면과 오이, 계란말이를 순서대로 올려 돌돌 말아주었다.

통통한 메밀김밥이 순식간에 완성!

기름 살짝 묻힌 칼로 쓱 쓱 잘라주니 예쁘게 잘 썰린다.

그릇에 예쁘게 담아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주니 돌아온 대답.

"다이어트 식단?"

메밀면은 생각보다 칼로리가 높아 다이어트 식단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의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담백하고 심심해서 건강한 한 끼라고 할 수 있겠다.

고추냉이 간장에 콕 찍어 한입 먹으니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 샘솟는다.

추적추적. 여전히 비는 내리지만

나의 마음엔 반짝- 해가 떠오른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힘은 이렇게나 위대하다.​​




메밀김밥 recipe

계란 3알에 쯔유 1스푼, 맛소금 한 꼬집 넣어 계란말이를 만든다. (메밀면 자체가 담백하기 때문에 계란말이의 간을 세게 하는 편이 좋다.)

아삭한 식감을 더하기 위해 오이를 준비한다. 오이는 김밥에 넣기 좋게 길게 썰어 준비.

메밀면을 삶아 찬물에 잘 헹궈 물기를 제거한다. (물기를 최대한 많이 제거해야 김밥을 쌀 때 김이 덜 쪼그라든다.)

메밀면에 들기름, 쯔유 1스푼, 맛소금 한 꼬집 넣어 간을 해준다.

김밥 김에 메밀면을 잘 펼쳐주고 계란과 오이를 넣어 말아준다.

기름칠을 한 칼로 잘 썰어주면 끝! (칼에 기름을 발라주면 김밥을 썰때 칼에 묻지 않고 예쁘게 잘 썰린다.)

진간장 1스푼, 물 1스푼, 고추냉이 조금 넣어 와사비장 만들어 같이 먹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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