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의 집에서 보라색 수국이 거실과 주방에 가득 꽂혀 있었다. 지영은 오늘 첫째 정윤이의 생일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다녔다. 집에는 화려한 풍선과 꽃장식으로 꾸미기로 했다. 풍선과 장식을 고르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지영은 수국을 좋아했다. 핑크색보다는 보라색 수국을 좋아했다. 보라색 수국을 보고 있으면 지영의 마음은 강해지고 용기가 났다. 비싼 꽃병에 꽃을 꽂아놓는 것은 지영의 로망이기도 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거실에서 밖을 보니 아파트 조경이 잘 되어있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윤이는 학교에서 준비하는 연주회 연습을 했다. 연주회는 10월 학교 행사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정윤이가 맡은 역할은 지휘자였다. 정윤이는 평소에도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선생님,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배려심이 많았다.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정윤이는 지휘자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정윤이 지휘자로서의 실력도 뛰어났다. 악보를 잘 알고 있었고 연주하는 곡을 잘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지영은 평소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했다. 남편이 깨기 전에 화장을 하고 머리를 드라이했다. 지영은 결혼 후에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었고 옷이나 신발, 가방에도 관심이 많았다. 오늘은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더 공들여서 머리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을 보내고 11시에 브런치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오늘 보기로 한 친구들은 정윤이와 같은 또래의 엄마들이었다. 같이 있으면 말이 잘 통했다. 카페에 도착하자 두 명은 미리 와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지영은 은경 언니와 진아에게 인사를 했다.
“어서 와요. 지영 씨.”
은경 언니가 지영을 반기며 인사를 했다. 명은 언니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진아는 머리와 옷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가방의 이름을 전부 알고 있는 지영과는 많이 달랐다. 지영은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주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진아는 주식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대화에 끼어들기가 힘들었다. 학원이야기를 해도 진아는 관심이 없었다. 진아는 지영의 교육관과도 많이 달랐다. 진아는 조기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우리 방 만들어서 주식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나 요즘 관심 있는 것 많아요. 진아 씨도 한번 해봐. 요즘 주식은 다 하잖아.”
진아는 웃으면서
“제가 주식은 잘 몰라서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요.”
진아는 자신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명은 언니가 카페에 도착하자 주식 이야기에서 부동산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명은 언니는 안 보는 동안 빌딩을 샀다고 했다.
“그냥 작은 거야. 큰 거 아니고. 빌딩에 사무실이나 사업체도 많아. 사고 싶기는 아파트 사고 싶었는데 강남은 너무 비싸서 싸게 나온 빌딩 샀어.”
“언니 빌딩이 더 비싼 거 아니에요?”
지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빌딩이라니 명은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지영은 돈이 많지 않아서 주식을 조금 사는 정도였는데 명은 언니는 역시 다르구나 했다. 지영은 명은 언니가 좋았다. 명은 언니는 자신과 비슷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돈을 쓸 줄 아는 여자였다. 자신과 잘 맞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영은 세명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껏 꾸민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면서 약간의 자랑도 하고 좋은 점은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날 먹은 브런치도 맛있었다. 생크림을 찍어 토스트를 먹었다.
‘이런 토스트는 어떻게 만들지?’
라는 생각을 하며 지영은
“다음에는 우리 집에서 봐요.”
지영은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지영은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가구를 바꾼 것을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추운 겨울날 지영의 시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평소에 지병이 있으시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회사는 현우가 대표가 되었고 지영은 어머니를 더 잘 챙겼다. 현우는 대표가 되면서 새벽에 일찍 출근을 했다. 책임감이 생겨서인지 회사 일에 더 매진을 했다. 현우는 사업을 잘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아버지가 했던 것보다 더 회사를 크게 만들고 싶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현우는 상속을 많이 받았다. 아버님이 생전에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유산 싸움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현우는 어느 날부터인가 짜증이 많아지고 욕을 자주 했다.
“왜 자꾸 욕을 하는 거야. 애들이 듣잖아.”
지영이 소리치자 현우는 씩씩대며 화가 더 나는 듯해 보였다.
현우는 기분이 나쁠 때마다 욕을 했다. 결혼생활에서 한 번도 볼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이 반복이 되었다. 지영은 현우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정윤이가 성당에서 받은 유리로 된 장난감을 깬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괜찮은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산산 조각난 것을 보며 욕을 하고 집을 나갔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실수일 뿐이었다. 지영은 화가 났다.
지영이 음식점에 현우가 젓가락을 떨어뜨리자 바로 젓가락을 주었다. 하지만 현우는 이러한 지영의 행동에
“젓가락을 내려놓아야지 가정교육은 못 받은 거야?”
라고 말했다. 지영은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젓가락을 어떻게 줘야 가정교육에 맞는 건데. 젓가락 떨어뜨려서 줄려고 그런 거야. 그게 무슨 억지야?”
현우는 화가 난 표정으로 지영에게
“그게 너네 부모한테 가정교육을 잘 못 받아서 그런 거라고.”
이 상황을 본 음식점 주인아주머니가 지영에게 다가와 등에 손을 대며
“남편이 이상하네. 괜찮아? 미친놈이네. 너무 신경 쓰지 마. 힘들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장인, 장모 욕하는 저런 나쁜 놈이 있네.”
지영은 그 장소에 다시는 있고 싶지 않았다. 창피했다. 자신뿐 아니라 부모까지 욕을 받는 그 상황이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지영의 기억 속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는 없지만 좋았던 몇 가지는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도 자신을 보살피는 것에 소홀하기는 했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지영은 스스로 노력하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 해낼 것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았다. 계속 잘하고 있었다. 지영은 지금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