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나의 고집스런 산책혐오견과 노상에서 박터지는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기고 오리는 버티고. 그 장면이 좀 징하기는 했는지, 어떤 중년의 여자분이 옆에서 보다못해 이렇게 말했다. " 아니 그렇게 싫다는데 산책 안시키면 안돼요?"
사실 처음 듣는 질문도 아니고, 꽤나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데 나는 준비된 대답을 했다. "노견이라 가만 놔두면 집에서 온종일 시체놀이만 하려고 들거든요. 산책이라도 안하면 진짜 건강을 버릴수도 있어서요." 낯 모르는 사람들의 그런 참견이 좀 성가시기는 해도 그 상황이 언짢지는 않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오지랖을 어느정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나의 학대범틱한 검은 아우라가, 직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염려스러울수 있기 때문이다.
버티기 한판에 들어간 오리에게 한번쯤 슬쩍 져줄법도 하건만 나는 꽤나 강경한 편이다. 한번 여지를 주면 이자식이 그걸 빌미로 계속 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앗 요거 안통하네~' 라고 스스로 느끼도록 내가 단호해져야 한다. 대신, 오리가 아무리 느릿느릿 걸어도 나는 오리에게 보폭을 맞추어 걷는다. 어디가 아픈게 아닌이상, 도중에 집으로 되돌아가는건 "Nope!"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 어림도 없다 이 잔대가리야. 내가 몇번 양보했다가 이 약아빠진 자식이 매번 계속 집에 가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통에 깨달은 바가 아주 컸던 탓이다. 씨알도 안먹힌다 요놈아.
전설의 개통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피곤한 개가 행복한 개다' 라고. 나는 오직 '개피곤'을 이루어내리라는 이 한가지 모토 아래, 가급적 개의 하루 운동량을 채워주려고 신경쓰고 있다. 개집사라면 누구나 알것이다. 개를 산책시키고 들어와 발을 닦인후, 기분좋게 달디단 낮잠에 빠져드는 나의 드르렁견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흐믓한 마음이 드는지. 내가 좀 귀찮고 힘들어도 그만큼 나의 개가 건강한 견생을 살수만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
놀랍지만 산책을 극혐하는 우리집 노견도, 별말없이 순순히 산책을 따라 나설때가 있기는 있다. 일년에 딱 두번, 긴 장마나 연이은 폭설로 오랫동안 산책을 하지 못했을 때가 그때이다. 모처럼 눈이 녹은 틈을 타, 주섬주섬 목줄을 챙기니 이게 왠일인가. 저도 꽤나 답답했는지 슬쩍 따라 나서는게 아닌가. 오 주여~. 하늘에서 금가루가 떨어지는줄 알았다. 애석하게도 그 모처럼의 환희가 다른 날까지 주욱 이어지진 않았지만, 우리는 그날 뭇 개산책러들처럼 실랑이 없는 '우아한 산책'을 즐길수 있었다.(윗그림 참조)
주말이나 휴일, 남편과 셋이서 산책을 할때에는 모처럼 남편에게 개줄을 넘기고 나는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가면 된다. 나와 둘이 걸을땐 제자리 버티기를 하느라 내내 뒷목 잡게하던 녀석이, 아저씨와 함께 걸을때면 궁둥이를 어찌나 살랑대며 걷는지, 아오~ 저놈의 얄미운 궁디를 '주 차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왜 저 자식은 나랑 둘이 있을때만 꼴통짓을 일삼는걸까. 바람난 남편과 개첩의 꽁냥꽁냥 투샷을 뒤에서 여유롭게 감상하며 레이저를 마구 쏘아보내다 보면, 어느새 오리가 멈춰선 채 뒤쳐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짜아식. 그 와중에 챙기기는.... 쩝.
이제 나는 거의 은둔을 벗어날 준비가 다 된것같다. 물론 아직도 집에 숨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또 차를 타고나가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일은 거의 없지만, 오리를 챙기다보니 이래저래 문밖으로 기어나갈수 밖에 없어진다. 이것은 선물인가 함정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오리라는 이름의 이 함정에 빠진 이후로, 나의 삶이 점점 세상 밖으로 끌려나가고 있다. 내가 매일 오리를 끌고 문 밖의 밝은 햇살 아래로 걸어 나가듯이.
오지랖
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오지랖 한번 '지대로' 부려보자. 요즘같은 삼복더위에, 선선한 이른아침이나 저녁무렵도 아니고 너무 '핫한' 시간대에 우격다짐으로 늙은개를 끌고 다니는 분들이 종종 보여 조금 걱정이 된다. 아무리 개들이 산책을 좋아한다지만 달궈질대로 달궈진 땅바닥을 지글대며 걸어야 하는 개발바닥의 사정을 주인이 살펴주지 못한다면 누가 살피겠는가. 제발 우리 인간적으로 그러지 말자. 몇일전 남편이 외근을 위해 운전중 신호대기에 걸려 서있다가, 한눈에 봐도 발바닥이 뜨거워 어쩔줄 몰라하는 늙은개와, 계속 깔깔대며 휴대폰 통화에만 열중하고 있는 얼빠진 개주인이 보이더란다. 폭포수 같은 침이 개의 벌어진 입에서 주르륵 주르륵 떨어지고 있고. 이런 미친. 차창을 내리고 한바탕 욕을 해주려다 참았단다. "아니 무슨 소리야~! 뭐라도 한마디를 했어야지~!!! 개가 바닥이 뜨거워 아무리 발을 동동거려봐야 그 바닥이 그 바닥인데 얼마나 뜨거웠겠어!" 부아가 나 하마터면 애꿎은 남편에게 헤딩을 날릴뻔 했다. 워~워~ 이런 개빡침 속에서, 진짜로 성질을 죽여야 하는게 맞는것인가 헷갈리는 상황이다. 워~워~
한여름 대낮의 지열이란 생각보다 살인적이다. 대패 삼겹살을 볶아도 될 판이다. 그나마 성인의 호흡기는 지면에서 1.5미터 정도 떨어져 있지만, 키 작은 어린 아이들이나 털 많은 개들은 체열이 급상승할수밖에 없다. '발바닥 지글지글'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심각하게 탈이 날수도 있고 체열을 다스리지 못하면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이할수도 있다. 어쩔수 없는 사정으로 한낮에 데리고 나갈수 밖에 없다면, 가급적 그늘만 골라 다니며 자주 쉬게하고 물을 꼭 가지고 다니면서 짧게 끝내야 한다. 순간순간 개의 상태를 살피며 걸어야 하고, 헥헥대는 개구호흡이 너무 길지는 않은지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제발.
워~ 워~ inner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