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빨간 소파(1)
무릇 월급쟁이들의 주말이란, 나른한 낮잠이 한자리를 떠커니 차지하고 있어야 제맛인 법. 남편의 고단하고 빡쎈 직장생활을 주욱 지켜보는 입장에서 우리의 주말은 "어디론가 떠나보자꾸나!" "옳거니!" 를 외치기 보다는, 셋이 뒤엉켜 혼곤한 낮잠에 빠져드는 편이 훨씬 더 실속있다 여겨지는 알토란같은 시간인 것이다. 이 시간이야 말로 외벌이로 고단한 남편이 유일하게 에너지를 풀충전하는 시간이며, 결단코 양보할수 없는 주말의 달콤함이다. 그렇게 셋이서 한바탕 졸다 일어나, 주섬주섬 소풍에 어울릴만한 간식거리를 챙겨 오리와 함께 주말 오후의 산책길에 나선다. 단언컨데 우리에게 이보다 더 달달한 루틴은 없다.
애석하게도 오리가 곰살맞은 무릎강아지는 아니지만, 뭇 강아지들이 그러하듯 옹께서도 주무실때 만큼은 우리몸 어딘가에 제 등을 착 붙이고 잠을 청한다. 옹께서 우리부부에게 하사해 주시는 최대치의 스킨쉽이다. 그렇다고 그게 반가운 나머지, 부부가 본격적으로 오리에게 달라붙어 쌍으로 질척대기 시작하면 오리는 대번에 횅하니 도망을 가버린다. 노신을 편히 눕히기에는 너무 성가셨던 모양이다. 나이들더니 유난히 개짜증이 많아지셨다. 어르신 소싯적이랑 확실히 틀리긴 틀리다. 걸핏하면 마루에서 아저씨랑 둘이 꼴사납게 노닥거리며 이 정실부인의 화를 촉발하시더니 이제는 만사가 귀찮으신거다. 이거 완전 웃긴놈이다. 지가 우리 건드리는건 당연히 되고, 우리가 제 몸 좀 만지는건 극구 사양이란다. 지가 우리입 핥아대는건 얼마든지 괜찮고, 우리가 그놈의 알량한 뽀뽀 좀 할라치면 쌩하니 돌아누워 버린다. 너 뭐냐? 너 이기주의 개쩔어 이자식아. 아줌마 아저씨도 한 자존심 하는 사람들이지만 경로우대차원에서 봐주고 있는건줄이나 아셔~!
이제와 늙은개 짜증을 다 받아주고 살려니 역시나 서럽고 외롭다. 남편은 여전히 노첩이 귀여워 어쩔줄 모르겠나본데, 이제라도 정신을 좀 차리고 나를 좀 챙겨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개 난닝구 사들일때 내 여름 스카프도 한장 클릭해 주고, 개 간식거리 구매할때 내 와사비과자도 좀 챙겨줬으면 싶다. 물론 다른 남편들에 비하면 보기드물게 살뜰하고 다정한 남편이긴 하지만, 저놈의 개자식한테 쏟아붓는 애정의 크기를 뻔히 내가 알기에 이에 만족할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깟 스카프 한장과 과자 부스러기 한봉지를 받아 먹자고 개첩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는 행위 자체가 나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깍아먹는 행동이라는 함정이 있기는 하다. 허나 막상 화사한 샬랄라 스카프 한장을 집에 가만히 앉아서 받아보면 또 그딴 소리가 안나온다. 가정의 정의를 실현하기엔 스카프는 한없이 보드라왔고 와사비 과자는 또 한없이 짜릿하였던 것이다. 쩝.
우리집 마루에 놓인 이 빨간소파는 이 막장 불륜커플의 꼴사나운 밀회장소이자 낮잠의 주무대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이 뻘건 물건을 내다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전에 이 소파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낮잠퍼레이드에 대해 나의 독자들께 꽤나 흥미진진한 방법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나의 이 놀라운 기획은 나의 개인적 서러움과 외로움의 예술적 승화물이며, 슬슬 재미를 잃어가는 사랑하는 나의 독자들에 대한 최대의 써비스가 될것이다. 음하하하 (매번 이래놓고 또 어떻게 책임을 질것인가. 오늘도 이불킥 당첨이다. 아~ 이 못말리는 설레발. 죽어라 죽어.)
오늘은 그 첫순서로, 걸핏하면 아저씨의 사타구니로 기어들어 그 눅눅한 아늑함?을 둥지삼아 숙면의 세계로 빠져들곤 하는 저 대담한 변태견과 그의 내연남?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니 고발하고자 한다. 위의 그림에 소개된 장면은 사실 엄청나게 미화된 장면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어린 독자들을 위해,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장면을 순화시켜 그렸다. 그당시, 정확히 남편의 중요부위에 '살포시' 턱을 괴고 잠든 녀석을 발견하고 꺄올~! 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이런 미친. (이러니 찰진 육두문자가 차마 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네놈이 어디 잘데가 없어서.... 나는 두눈을 시퍼렇게 뜬채로 저자식에게 착착 남편을 내어준 셈이다. 그것도 순서대로. 처음엔 둘이서 나의 메밀베게를 정답게 나눠 베고 낮잠을 자더니, 팔베게에서 겨드랑이로 겨드랑이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아흑.... 네 시작은 겨우 팔베게였으나 네 나중은 무려 사타구니였던 것이다. 허벅지를 베고 자기 시작할 무렵에 내 진작 이 사달을 짐작하고 과감히 싹을 잘라버렸어야 했다. (아무데서나 좀 자라. 이 왕싸가지야). 선견지명의 부재였다. 분노에 눈이 뒤집힐 노릇이지만 나는 제대로 화도 못낸채 작금의 상황까지 치닫도록 바보처럼 가만히 서있었던 셈이다. 냄비속에서 사우나를 즐기다 얼결에 푹 삶아져버린 개구리처럼, 두눈을 시퍼렇게 뜬채로 뻔히 당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이사태는 과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내가 누구를 탓할수 있으랴.
자. 자. 정신을 차리고 어엿한 정실부인으로서의 품위를 견지한채로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 후 한다는 짓이, 조용히 '구름방석' '대박 개방석'을 폭풍 검색하고 있는 내 손가락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한숨이 나온다. 이 얕디 얕은 수로 이 중대위기를 쳐 낼수 있으리라 생각하다니... 당장 밖으로 내치고 주리를 틀어야 마땅한 일이건만, 품위 유지를 위해 기껏 고민하고 선택한 일이 조공이라니. 온 집안이 핫하다는 개방석으로 이미 넘쳐나고 있거늘.
나는 저 사악한 개첩의 진짜 속마음을 진즉에 파악했어야 옳았다. 저 교활한 자식이 진정코 제맘에 쏙 드는 방석이 없어서 굳이 센터?로 가 잤겠는가. 저 자식의 마음속은 오직 정실부인인 나의 마음을 번민케 하여 나를 엿먹이려는 불순한 의도로 가득차있는 것이다. 내 속을 보란듯 뒤집어 놓고 나의 패악질을 유도해 냄으로써 나의 품위를 근본적으로 손상시키려는 음모인 것이다.
본의 아니게 19금으로 시작한 나의 고발 퍼레이드는 '빨간 소파'라는 주제로 중간중간 독자들을 찾아 갈 계획이다. 시작을 너무 세게 하는 바람에 용두사미가 되어버릴 위기에 놓이기는 했으나, 이 위기를 나만의 참신함과 개뻥 가득 함유된 구라성 낚시질로 어찌어찌 한번 타계해 나가 보리라 맘먹었다. 보라. 이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오늘이 12화이고, 총 30화 가량을 완주해야 하는 이 기나긴 여정동안, 나는 현재 위기에 봉착했다. 자칫 나의 독자들이 긴 여정의 권태로 슬슬 떨어져 나갈수도 있는 시기인 것이다. "집주우웅~!!!!!"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가려진 이 집안의 수치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독자들이 지루해 하는 꼴은 결단코 보지 않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자 급조된 이 막장 드라마 같은 기획물이, 나를 살리고도 남을 대박 아이템이 되어주길 기원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독자들은 다시한번 나에게 현혹된다. 나에게 현혹된다. 나에게 현혹된다. 레드 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