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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저씨가 다치던 날

by 스티키 노트
(제목: 나의 아저씨)---아크릴 물감

아저씨가 다치던 날.


글로 독자를 웃기고자 하는 나의 이 들끓는 야욕은 어느새 내 무의식을 꿰차고 앉아 내 욕망의 주인이 되어 버렸다. 원래의 나는 이렇지 않았다. 나는 내 담당의가 인증한 중증의 우울과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브런치 입성 이후 나의 이런 변화가 스스로 꽤나 흥미롭고, 누가 나좀 말려줬음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작가지망생이 개그병에 걸려 독자들을 웃기고 싶어 환장한 오늘의 현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오랜만에 진실성 넘치는 '진중한' 글로 나의 독자들을 한번 매료시켜 보리라.


남편이 직장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적이 두번정도 있었다. 두번 다 제법 큰 사고여서 집근처 종합병원에 한동안 입원해 있어야만 했다. 사고가 날때마다 나를 기암시킨것은 물론이거니와 오리가 받은 충격은 말할것도 없다. 나는 개들이 주인의 신상에 닥친 큰일을 직감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직관하게 되었다. 남편이 오리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다치거나 피를 흘린것이 아니었음에도, 오리가 받은 충격은 나에게까지 전달이 될 정도였다.


남편은 사고 당시 큰 수술을 받고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 후, 집 근처 종합병원으로 옮겨 긴 입원기간을 보냈다. 오리가 다친 아저씨를 처음본건 집근처로 옮겨 입원해있던 기간이었다. 그전까지 오리는 영문도 모른채 아저씨와 꽤 오랜기간 떨어져 있어야 했고, 나는 매일 집과 병원을 오가며 남편과 오리를 돌봐야 했다. 매일같이 내게 묻어왔던 병원냄새와 아저씨의 냄새를 맡으며 오리는 눈에 띄게 힘들어 했다. 오리는 아저씨의 안녕치 못함을 분명 직감하고 있었고, 야간 보초병처럼 종일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남편의 사고에 이어 개까지 생병이 나거나 탈이 날까 노심초사했다. 병원에서 귀가한 이후의 시간은 뻣뻣한 오리의 전신을 주물러 과한 긴장을 풀어주어야만 했다. 피말리는 하루하루였다.


오리가 집근처 병원 출입문 앞에서 붕대감고 휠체어에 앉은 아저씨와 사고 후 처음으로 상봉하던 날, 오리의 반응은 우리의 가슴을 무척 짠하게 했다. 병원 문앞에서 남편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저씨가 다친게 맞았어....' 오리는 서있던 자리에서 생뚱맞은 도리도리를 했다. 잉? 나는 도대체 개가 이게 무슨 반응인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오리가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예상밖의 정적이 흘렀다. 짖지도 울지도 않고 조용히. 뭐지? 왜 조용하지? 막 낑낑댈줄 알았는데. 설마 낯선 행색 때문에 아저씨를 못알아 보나? 병원냄새가 역해서 그러는건가? 아저씨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채 오리가 조용히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믿을수 없다는 듯한 그 표정. 연신 동동거리던 발짓 . 말로만 듣던 개망연자실이었다. 갑자기 개의 몸이 뜨끈뜨끈해져오며 "깽~!" 외마디 소리를 토해냈다. 나는 오리가 그자리에서 실신하는줄 알았다. "오리야~! 숨쉬어~!" 과장이 아니다. 개가 이런 표정을 지을수도 있는 거구나... 나도 그런건 처음 봤다. 개가 충격을 받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오리는 그후 시시각각 병원행을 고집했고 병원 현관은 오리의 집이 되었으며, 길었던 입원기간동안 아저씨를 너무나 자주 보고파 했다. 시시각각 아저씨의 안부를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일로 신경쓸것도 많았던 나는 꽤나 고달팠다. 병원 출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뭘 아는듯한 오리를 보고 무척 신기해 했다. 첫 상봉 이후, 평상시와 달리 사뭇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아저씨를 대하는 오리의 행동이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오리는 아기 다루듯 아저씨를 대했다. 누가 누굴 보호하겠다는 건지... 참. 오리의 절절 끓는 맘고생이 눈에 보였다. 제법 시간은 걸렸지만 남편은 다행스럽게도 두번 다 무사히 회복했고 회사에도 잘 복귀할수 있었다. 다행히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사건들 이후로 단 하나 달라진건 오리였다. 오리는 잘 다치고 속 썩이는 주인을 둔 죄로, 그만 애달픈 근심견이 되어버렸다. 오리는 아저씨와 산책을 할때마다, 더이상 앞장서서 걸으려 하지 않았다. 다쳤던쪽 다리에 찰싹 붙어서 남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이다. 호위무사가 되기로 맘을 잡순게 분명했다. 그걸 보는 나는, 걷다가 그 여린 작은 주둥이가 남편발에 채일까봐 늘 조마조마했지만 한번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리는 아저씨에게 맞추어 걸으며 신중히 보폭을 조절했다. 오리는 더욱 근심이 많은 개가 되어갔다.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지도 모른다. 개의 맘고생이 우리눈에 보였다.


심약하여 집안으로만 숨어드는 아줌마에, 걸핏하면 다쳐서 들어오는 아저씨에. 두루두루 근심거리가 지천에 널려 있으니 오리가 저러는것도 이해가 가고 더없이 미안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부부가 말썽 유기견을 거두어 건사하고 사는 듯 보이겠지만, 실상은 오리가 우릴 쉴드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누굴 구제한 것인가.


그러니 우리가 오리를 집에 두고 외출해 있는 동안, 무사히 곁으로 돌아오기만을 내내 바라고 애태우는 것이 오리 입장에서는 너무 지당하다. 생각 할수록 미안해지는 지점이다. 우리가 오리를 자식처럼 아끼고 진심으로 걱정 했더라면, 나는 더 강인해지고 남편은 더 주의했어야 옳았다. 사실 그런 의식은 분명 있었지만 인생이 맘먹은대로 움직여 주질 않으니 그렇게 살지를 못한것이다. 오리에게 너무 미안할 따름이다. 너무 맘고생을 시켰다. 주인이 있으나, 둘 다 물가에 내논 애 같으니 개가 어찌 마음을 놓고 편히 살겠는가.


핑계 같겠지만 그런 이유들로 우리부부는 오리가 시비를 걸어와도 웬만하면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다. 남편과 내가 밥먹을때 오리가 식탁아래에서 사정없이 집적거려도, 크게 나무라지 않고 그냥 대충 넘어가 준다. 원래부터도 온순하고 그닥 억심스럽지 않은 편이라, 참아줄 일도 사실상 크게 없다. 내가 오리에 대해 엄살스럽게 떠벌리고는 있지만, 오리는 유순한 편이다. 말썽이 거의 없다. (그냥 나를 조금 개무시할 뿐. ) 산책할때 어쩌다 끈을 놓쳐도 절대 날뛰거나 뛰쳐나가는 법이 없다. 오히려 당김이 없으면 불안해 하고 연신 뒤를 돌아본다. 별 탈없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불안한 눈으로 우릴 감시하고 살피는 것이다. 에휴...... 가끔은 하도 감시가 빡빡해서 은근 갑갑할때도 있다. 과잉보호를 당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주인이 돼가지고 작은 개 하나를 두고 두 인간이.... 참 잘 하는 짓이다.


오늘만은 막판에 개그적 반전따위 주워 섬기지 않을 작정이다. 오리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만큼, 미안한 마음을 안고 이대로 자연스럽고도 품위있게 글을 마무리 하겠다. 그런데 이거 뭔가 근질근질하다. 저 아래에서부터 뭔가가 꿈틀꿈틀 차오르는 이 느낌은 뭐지? 어어...부릉부릉. 뭔가 시동이 걸리려고 한다. 때마침 오리가 책상근처로 배고픈 호랑이처럼 어슬렁 어슬렁 다가오고 있다. 뭐지? 뭐지? 저 새끼 또 뭔 시비를 걸려고... 쎄하다. 오늘만큼은 오리도 나도 서로의 발작버튼을 눌러서는 안된다. 내가 앞에서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늘어놓은 얘기들이 있는데. 곤란하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뻘짓이 분출되기 전에 시급히 글을 마무리하고 노트북을 꺼버려야 할것 같다. 저자식의 눈빛이 왠지 범상찮은걸 보니 또 뭔일이 벌어지려나 보다. 안된다. 얼른 도망가야 한다. 어어~ 온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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