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 댕빨

by 스티키 노트
(제목: 누나 이건 아니잖아요. 네~?)---아크릴 물감. 유성펜

댕빨


"누나 이건 아니잖아요, 내가 더 잘할게요~. 네~?"

"시꺼 새끼야, 늦었어. 안통해!"


이 자식을 씻기려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야 한다.

씻기기로 한 당일날, 정 꼬투리 잡을게 없으면 표정이라도 걸고 넘어져야 한다.

"너 임마 오늘 표정 맘에 안들어. 안되겠어. 모요해~!

일단 꼬투리를 잡히고 나면 녀석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별소릴 다하지만, 일단 목욕통에 들어가고 나면 상황은 종결이다. THE END! 끝!


이제부턴 내 세상이다.

한시간가량 이 발칙한 자식을 맘껏 주무를수 있다.

이럴때 만큼은 오리도 나를 누나라고 부르며 애걸복걸한다. 음하하하.

유일하게 애원하는 눈길도 마음껏 받을수 있다.

그간의 것들을 속시원히 설욕하는 거다.

그간의 내 모든 울화와 치욕들을 비눗물과 함께 남김없이 씻어내릴것이니.



개주방 아줌마로 산 세월이 어언 13년이다. 매일 칠첩반상을 이 개자식한테 해바치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을 안한 나였다. 나를 개무시하고, 곁도 안주고 아저씨만 밝히면서 시건방진 자식, 나에게는 따뜻한 눈길 한번이 없었다. 아침에 아저씨 출근하고 나면 뒤돌아 바~로 태세 전환하여 나한테 개붙기는 하기만, 나도 그정도는 안다. 그게 결코 너의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의 검은 속내를. 다 지가 먹고 살려고 그러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내가 집에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죽을때까지 '모쏠'이었을 놈. 내가 네놈 따위에게 남편을 빼았기다니.... 이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미행을 붙여서라도 내 남편을 사수했어야 옳았다.


됐다. 이 사악한 자식아.

오늘의 이 치욕을 당하기 싫었으면 나를 무시하질 말았어야지~!

평소에 잘했어야지~!

나도 개를 키우면서 한번쯤은 갑이 되고 싶었더랬다.

녀석은 거듭 '누나'를 복창하며 애원하지만 어딜!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오늘 죽었어 씨...


녀석은 최후의 발악을 하느라, 주특기인 아련한 눈빛을 목욕통 속에서 마구 날려대고 있지만 됐다그래~. 안보면 그만이야.


그대신 주물주물 다 씻기고 나면 이 연두색 예쁜 수건으로 널 닦아주마. 보송보송하게. 뽀득뽀득하게.

너의 미모와 아름다운 아우라를 온세상에 보여주겠어.

너의 짦은다리, 긴 허리, 유니크한 머리통까지도 눈부시게 빛내주겠어!

너의 독보적인 견생이 더욱 빛날수 있도록 이 누나가 만들어 주겠다. 음하하하하

아~! 눈부셔~!


정신을 차렸을때, 이미 난 어느새 다시 을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셀프로.

오리는 다시 아름다운 개첩으로 거듭났고, 오늘도 범상찮은 미모를 한껏 갱신한 뒤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