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보다 인도적인 나의 개 오리에게.
오리야~!
아줌마가 직딩도 아니고 백수 주제에 매주 글 올리는 브런치까지 말아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이 아줌마의 피말리는 워킹타임을 좀더 대승적인 차원으로 이해해 줄순 없겠니? 우리 둘다 얹혀사는 처지에 어떻게든 책 출간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할것 같구나. 운이 좋아 내게 벌이가 좀 생긴다면 싸가지가 바가지인 네게 맛있는 치킨을 거하게 쏘도록 해볼게. 양심상 너나 나나 불쌍한 아저씨한테만 빌붙어 살수는 없지않겠니? 이제 이 아줌마가 혼자서 다시 일어설수 있도록 인도적 차원으로다가 이해를 좀 바랄게. 아줌아 너무 안됐다 그지?
---주방 아줌마가.
너의 뒤에서
남편한테 얹혀 살고있는 처지에, 양심상 먹고 살 궁리를 아예 안하고 살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오리에게 매일 나의 뒷모습을 너무 장시간 보게한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오버하여 대사를 그르치지 않으리라 내 그리도 굳게 다짐을 했건만, 저놈의 개한테 참 미안하고 마음이 쓰이는 것을 낸들 어찌하겠는가. 그나마 나의 아찔한 뒷태가 오리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미안함은 가시질 않는다.
난 매일 커다란 작업대에 의자를 바짝 당기고 앉아, 노트북에 시덥잖은 글을 쓰거나 화판에 뭔가를 끄적댄다. 믿기 힘들겠지만 내 나름대로 엄청 공들여서 쓰고 그리는거다. 그렇게 독창적 인생살이를 위해 한껏 열을 내다보면은, 잠시만 정신을 팔아도 예닐곱 시간이 훅 지나가 버린다. 그시간 동안 오리자식은 혼자서 뭘하고 있을까. 늙은개답게 잠을 청하거나 열일하는 내 등판을 가만히 쳐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고단해 기절할만큼 긴 산책을 시켜줘도, 내가 등돌리고 일하는 시간동안 내내 잠만 자고 있지는 않는다. 구미가 당기고도 남을 핫한 장난감을 사 줘도 심드렁하다. 종일 입에 먹을것을 물려줄수도 없다. 먹을때 만큼은 열광적이지만 경도 비만을 지적받은 이마당에 내 어찌 어르신 건강에 누를 끼치겠는가. 어르신 미모도 미모지만 한창 이너뷰티, 건강관리가 중요한 나이 아니시겠는가.
나름대로 개님의 삶의 질 개선과 치매 예방을 위해 하루 두번, 아침 저녁으로 간식찾기 놀이를 한다. 작게 조각낸 간식 사오십알 정도를 집안 곳곳에 숨겨놓은뒤, "찾아~!!" 한다. 나는 교묘히 숨기느라 지쳐 나가 떨어질 판이지만, 옹께서는 세상 발랄하게 보물찾기를 시작 하신다. 방년 십오세 오리할배께서 가장 즐겨 하시는 엑티비티이다. 십년이 넘도록 이 놀이를 매일 두세번씩 하다보니 이젠 그 많은걸 거침 없이 단박에 찾아낸다. 영감님 제발 쉬엄쉬엄 찾으시라 내 그리 부탁을 했건만... 내가 일하는 동안 옹께서 즐기실 소일거리를 아무리 고민해 봐도, 더이상 기발한 솔루션을 발굴해내기는 힘들것 같다. 집에 아이멕스 영화관을 설치할수도 없고. 쯧. 인생이 삽질이다.
나는 이럴때 옹께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 게임을 할줄 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내가 일에 몰두해 있을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수만 있다면, 아무리 비싼 책이나 게임기라도 사다 안겼을것이다. 일하다 갑자기 뒷통수가 따가워 흠칫 뒤돌아보면, 노인분이 언제부터였을지 모를 레이저를 쏘고 있다. 뭐지? 이글이글 불타는 저 눈깔은. 흡사 살생을 맘먹은 독수리의 그 눈깔이다. "네 이년~!!! 언제까지 무심히 등돌리고 있을 셈이더냐. 네 감히 늙어가는 나를 이리도 적적케 하다닛..." 이다지도 노여워 하시다니. 결국 분노버튼이 눌린것인가.
일하다 전부 내팽개치고 오리에게 달려들어 부비적부비적 문대기 시작한다. 주물러 터트릴 기세로 꽉 끌어안고, 한껏 스타일을 살린 머리통에다 대고 뽀뽀를 퍼 붓는다. 표정만 봐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는걸 대번 알수 있지만, 자고로 애정표현을 개 입맛에 맞추어 해주려다가는 아무것도 못하는 법. 개들은 인간의 포옹도 뽀뽀도 달가와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안하는것보단 낫길 바라며 난 그냥 내가 하고픈대로 한다.
미안한건지 무서운 건지 찔리는 건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암튼 일한답시고 늙은개를 너무 오래 방치하는것은 심정적으로 영 할짓이 못된다. 무겁고 신경쓰이는 일인것이다. 인간보다 예닐곱배나 빠른 시간을 살고있는 개. 인간의 하루가 개에게는 무려 일주일인 것이다. 조바심이 나지 않을수 없다. 오리의 삶의 질은 개몸종인 나에게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잘해야 훗날 오리가 떠날때 덜 미안할 것이다. 개를 보내놓고, 아주 나중까지 두고두고 가슴 아파 방황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개가 떠난뒤 집사가 감당해야할 아픔과 미안함은 사는 내내 무뎌지지도 않는다. 젠장. 개는 나를 용서해도 나는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인간으로서의 나의 삶에 농땡을 칠수도 없는 일. 이 균형을 잡기가 보통 빡쎈게 아니다.
어찌됐건 개랑 놀아주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오리같은 싸가지견들에게는 더더욱. 이거 이거 내가 이럴줄 알고 집에 개를 들이는 일을 첨부터 안만들려 했던거다. 진짜 골백번 얘기하지만, 어쩌다 저자식이랑 십삼년전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이렇게 내 인생을 통으로 볼모잡혔다... 내 참...
여러가지 궁리를 하던중, 어찌됐건 개한테 너무 장시간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내 기준에 가장 찝찝한 사안이므로, 어차피 안할수 없는 글그림 작업을 오리 '면전'에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제작년에 큰맘먹고 들인 넓은 작업대위에 개방석을 올려놓고, 일하는 동안 중간중간 아이컨텍을 하기로 한다. 개들 입장이야 내가 다 알수 없는거지만, 왠지 개들의 세계에서도 뒷모습이 주는 쓸쓸함은 인간계와 크게 다르질 않을것 같아서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맘 편하자고 하는 일. 그래도 어쩐지 이렇게까지 하는 내맘을 오리도 영 모르지만은 않을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럴수가. 작업대에 오리를 올려놓고부터 예상치도 못한 엄청난 성과가 있었다. 그전엔 영감님이 마구 쏴대는 레이저로 죄없는 내 뒤통수가 따가웠다면, 지금은 앵글의 변화가 생긴 관계로 내 오른쪽 관자놀이에 '빵꾸'가 나게 생겼다는 사실. 나의 소중한 뒤통수가 드디어 해방된 것이다~! 아하하하 아하하하~! 실로 엄청난 성과이자 어마어마한 변화이다. 아하하하하~! 일하고 있는데 놈이 하도 옆에서 야리는 통에 이제는 집안에서 썬글라스를 끼고 일해야 될 판이다. 하아..... 놈의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