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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누나! 어디가?

by 스티키 노트
(제목: 누나! 어디가?)---스마트폰으로 그려본 그림 . 저 불꽃 눈깔을 보라. 내가 어딜 갈까봐 최전방 군인처럼 나를 철통 감시 했다.

하고 많은 인간들 중, 나같은 곰팡내 작렬의 히키모코리를 새 주인으로 만난건 천우신조였던것일까. 처음 오리는 꽤 심각한 분리불안에 시달렸다.


주인이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짱박혀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도 마라. 모든게 문제였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얘한테 붙들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수도 씻을수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악을 써댔기 때문이다. 이 개또라이 같은 녀석이 어찌나 울어댔던지, 사방에서 민원이 빗발쳤다. 아파트 주민들도 적잖이 괴로웠을 것이다.


아주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그렇게 울어대는 통에, 우편물을 가지러 잠시 아랫층에 내려갔다 올 수도 없었고, 심지어는 내가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기만 해도 녀석은 귀신을 본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아니 이자식이... 나더러 꼼짝도 하지 말라는거야 지금?


레드썬~!

오리에게 최면을 걸어 그간 무슨일이 있었기에 네놈이 이러는 것이냐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최면따위가 먹히는 놈도 아닌것 같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줄것 같지도 않아서 그건 애저녁에 포기했다. 팔구년 뒤쯤 이 무지막지한 놈에게 드디어 말문이 트일 낌새가 느껴지면, 내 그때는 꼭 한번 시도를 해 볼 작정이다. 다소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인듯 하니 이만 넘어가도록 하자.


현재 제 눈앞에 내가 보이고 둘이 한 집에 있어도, 다음 순간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게 될까봐 녀석은 오줌까지 흘리며 절절 맸다. 첩첩산중이었다. 불꽃같은 눈깔을 장착한 채, 마치 최전방에 배치된 군인들처럼 녀석은 날 철통같이 감시했다. 되려 나에게 목줄이라도 채울 기세였다. 생각보다 미친놈이었다. 오리는 낮에 아무리 졸려도 누워서 잠을 청하는 법이 없었다. 선채로 꾸벅꾸벅 졸다가 꽈당하고 넘어지면 난 매번 놀라서 달려간다. 녀석은 잠시라도 혼자 남겨지지 않기위해 별짓을 다했다. 아무리 봐도 날 엿먹이기 위한 개수작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녀석이 비명을 지를때 가만히 그 소리를 들어본다. 신경질적이기 보다는 처절했고, '옆에 좀 있어주세요' 보다는 '살려주세요'에 더 가까웠다. 유튜브 같은데서 한번쯤 본적 있는,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 앞에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내지르는 소리 같았다. 오리에게서 고통에 찬 절규를 듣는일은 나로선 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너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거니...' 내쳐지고 버려지는 공포가 자꾸만 자꾸만 오리를 집어 삼키려 들었다.


문제는 그 비명을 들을때마다 나까지 고장이 났다. '싸가지 없기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도 싶었지만,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듯한 내 강아지의 석연치 않은 울음소리에, 자꾸만 나도 고장이 났다. 오리의 공포가 나에게까지 훅하고 전이되는 느낌. 우린 이미 남이 아니었다. 모름지기 생명체를 키우는 존재라면 무조건 용감해지고 볼일이며, 강단도 배짱도 있어야 한다는게 나의 평소 지론이었음에도, 자꾸만 심장이 내려 앉았다. 가슴이 졸아 붙는것 같았다. 이깟일에 전투력을 상실하다니. 개주인이 되기엔 내 싹이 너무 노란게 아닌가 생각했다. 싸가지가 없는건 바로 나였다.


오리앞에서 고장난 표를 최대한 내지 않는것이, 내가 이 겁에 질린 생명체에게 해 줄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심약한 주인을 만난 죄로 맘고생하며 살도록 내버려둘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오리에게 괜찮아 괜찮아를 해줄수 있으려면 우선 나부터 괜찮아져야 한다. 오리에게는 불안장애를 앓는 심약한 주인보다, 무지랭이 같은 걸걸한 주방 아줌마가 필요했다. 오리에게는 맘껏 비벼대도 허물어지지 않는 든든한 언덕이 필요했다.


나는 이 극한의 지엄한 감시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잠시 화장실 용무를 보러 갈때도, 샤워를 할때도 오리를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오냐. 이 아줌마의 미친 몸매를 마음껏 구경하게 해주마. 그리고 집에서 갑작스런 움직임은 가급적 삼갔다. 놀라지 않게끔 남편과 나는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였다. 허우적 허우적. 약간 코믹하기도 한것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 싶었지만, 일단은 '개안심'을 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제목: 누나! 어디가? 2 ) ---오리를 정식입양했을 무렵 스마트폰으로 한번 그려본 그림. 그땐 초반이라 그림스타일이 이랬고 오리도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집에 온지 반년쯤 됐을 무렵, 그러니까 정식 입양이 있었던 그 이듬해 봄에, 드디어 오리의 안정이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부터 슬슬 검색해 놓았던 훈련에 돌입했다. 나 혼자 현관문을 열고 나가 일분 있다 다시 들어오기를 사흘동안 골백번 반복했다. 그 다음엔 삼분 있다 들어오길 사흘, 오분 사흘, 십분 사흘. 행여 탈이 날까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하루에 오륙십회씩 수시로 들락거렸다. 아줌마의 심상치 않은 행보에, 이 개또라이는 초반 미친듯 울어댔고 애꿎은 현관문만 너덜너덜해졌다. 아... 이건 분명 악몽일거야.


드디어 한달쯤 지났을 무렵, 나는 아파트 상가에 입점해 있는 수퍼마켓에 죽어라 뛰어갔다 오는것까지 성공했다. 그때 사온 애호박으로 대망의 고추장 짜글이를 끓여 먹으면서,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남편과 감격의 눈물을 질질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오리에게 절실했던건, 우리 아저씨 아줌마는 '반드시' 나에게로 되돌아 오더라 하는 나이스한 경험이었다.


그리하여 오리의 양아치 짓은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짐작컨대 오리의 고통까지 사라진것은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한번은 몹시 다급한 일로 어쩔수 없이 남편과 함께 집을 비워야 했었다. 주말이었다. 혼자있을 오리가 너무 걱정되어, 디지털 카메라의 동영상 촬영기능을 잠시 활용하기로 했다. 나중에 녹화분을 확인했을때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화면속 오리는 꼼짝도 않고 현관문 손잡이만 줄창 바라보고 있었다. 벌을 서듯 처음 그자리에 꼼짝없이 박혀 있었다. 여섯시간도 넘는 시간을 한번 눕지도 않고 시선을 꽂은채로, 장승처럼 그렇게 버티고 있었던 거다. 카메라 베터리는 진즉에 꺼졌지만, 우리가 살그머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대번에 오리랑 눈을 딱 마주친 그때 정황을 보면 분명했다. 우리가 현관을 나설때 보았던 딱 그 자리 그자세였다

오리는 부들부들 떨며 꼼짝없이 계속 현관에 박혀 있었다.


양아치는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었다. 우리가 씻고 소파에 앉은 그때, 오리는 기다렸다는 듯 벌컥벌컥 물을 마시더니 곧장 쓰러져 잠을 자기 시작했다. 잠든게 아니라 기절한 쪽에 더 가까웠다. 한달간의 전지훈련을 빡쎄게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씨름선수 같았다. 해변에서 허리를 동여매고 타이어를 끌다 온게 분명했다. 으이구 이 미련한 놈... 기왕 우릴 기다리는 동안 맘편히 자고 쉬고 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마구 벽을 긁으며 기절해 자는 오리를 어루만지며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다. 'ㅠㅠ흐잉 이자식아...... 개싸가지야....'


주인의 가슴을 막 후벼 파제끼는 이 쪼맨한 싹퉁바가지를, 앞으로 우리는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위의 두 그림설명

(제목: 누나 어디가?) --스마트폰으로 그린 그림.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디지털 그림이 몇장 있기는 있었다. 처음 오리를 정식으로 입양했을 무렵 스마트폰으로 한번 그려본 그림이다. 그땐 초반이라 그림 스타일이 이랬고, 오리도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녀석은 번뜩이는 감시와 아련한 회유로 나를 24시간 철통 감시했다. 그야말로 꼼짝마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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