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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트리플 악셀

by 스티키 노트


(제목: 기다려~!)---아크릴 물감

트리플 악셀


오리녀석에게 화식을 해 바친지 어언 십년이 넘어간다. 쌀밥과 야채와 고기를 익혀 동량으로 섞어 먹인다. 개 주제에 입맛이 까탈이라, 야채와 육류는 자주 종류를 바꿔가며 준비한다. 가급적 다양하게 상을 올린다. 옹께서 입맛에 맞으셨는지, 건강의 비결로 화식을 꾸준히 계속 하시겠다 고집하시니 별 도리가 없다.


사료는 이빨을 단련하는 용도로 한주에 1회만 먹인다 (입이 하도 고급이라 사료는 그나마 잘 먹지도 않는다. 건방진 자식). 독자들께는 너무 미안하다. 개첩 치하의 삶이 하도 고달파 욕이 절로 나온다. 너무 찰진것이 송구하여 다시한번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사실 우리집 똥강아지에게 신묘한 개인기가 하나 있다. 그 이름하야 '트리플 악셀'. 맹세코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


이 가공할 액션은 하루 딱 한번, 오로지 내가 녀석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그 시간에만 펼쳐진다. 오리는 그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다. 식사준비가 얼마나 걸릴지도 알고 있다....무섭다. 보통놈이 아니다.


내가 양배추를 꺼내 분주히 도마질을 시작하면, 오리가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한다. 설렘설렘한 눈으로 조리과정을 올려다 보며 뚫어져라 관찰하다, 나와 딱 눈이 마주친다. 이때다. 녀석이 옆에 있던 실내화 한짝을 물어 휙 공중으로 날림과 동시에 바닥을 차고 올라 제몸을 띄운다. 아악....어메이징!!!!!!!! 도약이 지린다. 볼때마다 감탄이 나오지만 이사도라 던컨이 따로없다. 크게 될 놈이다. 기가 막힌다. 김연아 저리가라다.



(제목 : 트리플 악셀) ---아크릴 컬러 , 붓펜

난 지금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거다. 열다섯살 먹은 강아지가 어마어마한 체공시간에다가, 휘리릭 몇바퀴나 공중 트위스트를 하고 사뿐하게 착지를 한다는게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긴가...... 보통놈이 아니다.


나는 그 지점에서 한껏 환희에 찬 표정을 필수장착한채 탄성을 발사한다. 에누리 없이 딱 적시에 1회 내지 2회 발사해야 한다. 그걸 빼먹고 안해주면 사달이 나는 것이다.


모두가 아다시피 예술이란 타이밍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구현되어져야만 제대로된 오리표 트리플악셀이 완성되는 거다. 김연아를 봐라. 단 0.1 초의 착오도 용납될수 없다. 이게 포인트다.


영감님표 트리플 악셀이라지만, 그 상황에서 노인분은 간데없고 개멀쩡한 발레리노가 하나 거기 서있다. 뭐야. 빌리 엘리엇이잖아!. 저 개탄탄한 허벅지 근육이라니.

"늠름하다. 내새끼~. 개멋있어~~~~!!!!!"


맹세코 요만큼의 훈련상황도 없었다. 강요? 학대? 그딴게 먹히는 개가 아니다. 오직 맛있는 밥을 먹게 되리라는 기대에 찬 강아지의 흥. 그 순수한 흥이 빚어낸 자연발생적 세리머니의 결정체. 이 스티키 노트님를 향한 환희의 이벤트성 퍼포먼스라 볼수있겠다. 순전히 오리적 발상이다.


성공적인 착지후 오리는 곧바로 내 표정부터 살핀다.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한 루틴이다. 그럴때 보면 짜아식. 눈이 아주 반짝반짝 한다. 똘망똘망 자체.

'아줌마가 내 스핀을 봤을까???' 이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 큰소리로 꺄르르 꺄르르 웃어준다. 한껏 환희에 찬 표정과 함께. 상황과 여건이 되면 물개박수도 곁들인다. 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공중제비는 재차 삼차 반복된다. 내가 볼때까지. 녀석이 원하는 만족한 리엑션이 나올때까지. 무섭다. 보통놈이 아니다.


이것은 오롯이 개환희에 찬 개예술적 결과물이다. 내 오늘 저 여인에게서 기필코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야 말리라. 결의에 찬 응원의 짝이를 죽어라 흔들어 대며 나에게 빠이팅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오리. 사랑스럽게도 내가 저 먹을 밥을 준비할때마다 설레임에 나이를 다 잊는다.


고로 트리플악셀이란, " 아줌마~! 좀 더 빨리 대령할 수 없어? 이래도? 이래도???" 대충 이런 뉘앙스의..... 퍼포먼스인 것이다. 후훗. 크게 될 놈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만인의 부러움을 삼이 마땅하다. 열다섯살 먹도록 개멋진 트리플 악셀로, 매일 매일 주인에게 프로포즈를 펼쳐 보여주며 이벤트와 기쁨을 선사하는 치어리더견. 내가 바로 그 갸륵한 개를 거느리고 사는.....................개식모인것이다. 어마어마하다. 개주방 아줌마였다. ( 이것이 내가 그토록 꿈꾸던 삶이었단 말인가.)


얄미운 개자식.... 나를 식모 취급이다. 내가 저한테 여태 해바친게 얼만데... 밥때 말고는 오롯이 아저씨만 바라보고 있을거면서. 이를데 없이 괘씸하다. 내가 이 나이에 한낱 개첩 따위에게 건강식단이나 해다 바치고 있으니. 내 처지가 너무 한심해 오늘도 역시나 피눈물이 난다.


나는 이자리를 빌어 이제 이만 슬기로운 본처생활을 쫑내고자 한다. 내 인생을 걸고 이제 분연히 일어날 것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나는 또다시 고발한다. 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저 오만방자한 것을 끌어내 당장 물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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