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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산책(1)- 산책 혐오견

by 스티키 노트
산책 나갈때와 들어올때, 벌써 다리와 눈깔부터 다르다. 지가 엄청 무서워 보일거라 생각한다. 귀여움이 치사량이다.

산책


그래 알아.

때론 너도 하기 싫은 일이 있겠지.

그래 나도 알아.

너도 때로는 가기 싫은 곳이 있을수 있어.

그래 이해해.

하지만 명색이 개가 산책을 싫어한다는게 이게 말이나 되니?

넌 개잖아.



아 진짜 고루고루 하는구나 싶은것이, 우리집 늙은 개 오리는 그 귀하다는 '산책 혐오견'이다. 삼대가 오매불망 덕을 쌓아야만 만날수 있다는 그 드물디 드문 '영물'인것이다. 주인의 귀차니즘을 절대 침해하지 않는다는 그 귀한 이름. 산 책 혐 오 견. 근데 내가 낳은 내자식도 아닌데 얜 왜 날 닮은거지?


내가 집에 들어박혀 있는걸 좋아하고 귀차니스트인것도 확실하지만, 산책이란게 모름지기 건강발랄견의 비책이거늘, 개가 산책을 극혐한다는게... 이게 말이 되는건가? 너 진짜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 유니크한 견생아~


어쨌거나 개의 건강을 내가 책임지고 있고, 늙은 놈 개수발하느라 내 인생을 갈아넣고 있는 중이니만큼, 오리가 치매도 안걸리고 나중꺼정 똥꼬발랄 건강하려면, 싫어도 데리고 나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모름지기 개라면 산책을 하면서 노즈워킹도 많이하고 여기저기 오줌도 열심히 뿌리고 다녀야 심신의 건강을 고루 지킬수 있는법. (이론은 빠삭한데 현실은 왜 이모양인지....).


누가 뭐라해도 이 자식이 내가 끓여주는 웰빙 여물을 얻어먹고 있는한, 내 최소한의 요구사항 정도는 들어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내가 얘한테 아이비리그 입학증서를 따갖고 오라고 한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말문트고 나랑 스몰토크를 나누자고 제안한것도 아닌데. 이깟 별일 아닌일로 오리와 내가 서로 어색해져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얜 왜 종일 퍼 자다가 밖에만 나가자고 하면 이지랄인건지.... 완전 빠져가지고. "너 계속 이짓거리하다가 건강 버리고 뚱뚱해지면 그때가서 아줌마 원망할꺼니?" 그나마 주말에 아저씨와 함께 나가는 산책길은 좀 덜하긴 한데, 나머지 5일은 이놈의 안나가려는 개때매 있는대로 내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고달픈 내 영혼의 목소리가 육두문자로 마구 튀어 나오는 이 사태에 대해 나의 독자들께 다시한번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초반에 잠시 그러다 마는게 아니라, 이 야비한 노견은 산책하는 내내 제자리 버티기를 한다. 막상 멀리 나가면 눈 뒤집고 마킹도 많이 하고 냄새도 게걸스럽게 많이 맡을거면서, 도대체 얜 왜 이러는 걸까. 가기 싫다는 놈 억지로 질질 끌고 다니다보면, 집에 돌아 왔을때 허리와 손목이 다 시큰거린다. 이거 안당해본 사람은 절대 이 고역을 모른다. 오리가 그렇게 체신머리없이 다리 쩍벌하고 아니 가겠다 버티면, 나는 그 벌건 대낮에 길바닥에서 강아지 학대범처럼 개를 질질 끌고 다니는 추태를 보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안가겠다고 버티는 개와 노상에서 진땀 흘려가며 박터지게 실갱이하다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멈춰서서 우릴 구경하는지 모른다. 옹께서 그렇게 볼썽 사납게 개또라이짓 할때마다, 아오.... 나는 정말이지 쪽팔려서 죽을것만 같다. 설마 이 아파트에 개 학대범 출몰에 관한 소문이 벌써 짜~하게 돌고 있는건 아니겠지?


창피하다.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구국의 일념으로 우리 개개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개인과 가정이 바로 서야 이 나라가 바로 서지 않겠는가. 이렇게 못된 눈깔을 치뜨고 교양머리없이 마구 주인을 야리는 반사회적 행위에 가담하는 개들은 국가차원에서 교육을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보아라. 지금 사방 수두룩하게 산책 나와있는 저 이쁜 언니들과 그녀들의 곰살맞은 견공들을. 우아하게 몇걸음 앞서걷고 있는 저 개들의 늠름함이 보이지 않는가. 암. 저게 산책이지. 나의 오만방자한 눈깔견은 진짜로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얹혀사는 개답게 지금부터라도 제발 눈치라는걸 좀 챙기고 사근사근하게 처신할순 없을까. 나는 언제쯤 저 언니들처럼 나의 개님과 실갱이 따위 없는 평화로운 산책길을 거닐어볼수 있는걸까. 언제쯤 난 정형외과의 독한 약들과 빠이빠이 하고, 허리와 팔목의 안녕을 누려볼 수 있는것일까.

오리와 윈저체어.jpg 왠지 쩍벌 의자랑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하다. 웃기는 짜장이다. 지가 엄청 무서운줄 알지만 사실은 세계에서 제일 귀여운 순간이다. 크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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