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솔과 면도 비누(feat. The four Hoseman, War)
성인 남자라면 대부분 면도를 합니다.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기르는 수염외에 지저분한 부분을 면도하는 것이죠.
면도를 몸을 씻는 것처럼 매일 매일 일상적인 반복으로만 여기고, 일에 치이던 젊은 시절에는 급히 전기 면도기로 수염을 깎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전기면도기의 날에 부서지는 수염의 끝부분에 bump라고 하는 돌기들이 생기거나 붉게 발진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여, 요즘 상업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카트리지 면도기를 오랜 동안 사용하였습니다.
한동안은 카트리지 면도기를 잘 사용했습니다. 거의 십수년은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카트리지 면도기를 사용하면 수염이 안쪽에서 뭉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전 제 피부가 예민해서 그런 거겠지 하며 무의식적 반복행위로 카트리지 면도기를 사용하고,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깡통에 들어 있는 면도 거품과 함께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돌아가신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오랫동안 사용하시던 면도솔을 제게 물려주셨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많이 들어 있던 면도솔이었습니다. 그 면도솔을 집에 있는 세안용 비누를 사용하여 거품을 내고, 한동안 카트리지 면도기를 사용했었습니다. 사용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세안용 비누 말고, 면도용 비누는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세안용 비누로 거품을 만들고 면도를 하면, 세안용 비누는 면도날이 지나면서 윤활작용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면도기에 조금만 힘을 주면 면도 후 쓰리고 따가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면도솔도 아버님께서 오랜동안 사용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의 털이 한 두개씩 계속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구글링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가장 먼저 면도솔을 구입했습니다. 처음에는 면도솔에 뭐 이정도의 비싼값을 들여야 해 하고, 적당한 선에서 구입을 했고, 초보자는 오소리털, 멧돼지털, 말털과 같은 자연산털보다는 인조모를 추천길래, 인조모로 된 면도솔을 구입해서 한 일이년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면도솔만 있으면 되는 것인줄 알고 면도솔만 구입해서 세안비누로 거품을 내고 거기에 약간의 마누라가 사용하는 트리트먼트를 섞어 면도 거품을 내고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던중, 아주 우연히 안전면도기도 찾아보게 되고, 면도전용비누, 에프터 쉐이브, 프리오일, 프리밤, 알럼블럭, 보울, 스커틀 등의 참 많은 면도용품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한두개씩 구매하여 지금은 기존에 사용하던 카트리지 면도기를 사용하지 않고 안전면도기를 사용하여 면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식 면도를 즐기는 사람들은 면도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 아니고, 그 행위 자체가 의식이며 취미이고 힐링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가 면도 거품을 내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떤 면도솔을 사용할까, 어떤 면도 비누를 사용할까, 어떤 보울이나 스커틀을 사용할까 선택하는 즐거움 부터 시작합니다.
면도전용비누는 일반적인 세안비누와 다릅니다. 일반적인 세안비누보다 더 면도로 인해 발생하는 피부자극을 감소시켜주고, 금속의 면도날이 피부를 지날때 잘 미끄러지게 하는 윤활작용과, 금속날과 피부가 마찰할때 생기는 면도화상을 감경시켜주는 역할까지 해야 하고, 클래식면도의 백미인 크리미한 면도크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잘 풀어져야 하는 것이죠. 이런 면도 비누를 백년넘게 만들어온 기업들도 많이 있구요.
게다가 면도비누마다 특징있는 향과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누를 어떤 면도솔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래더의 차이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프로소라는 면도 비누가 있습니다. 이 비누를 사용하여 거품을 만들때, 오소리털로 만든 면도솔, 멧돼지털로 만든 면도솔, 인조모로 만든 면도솔 각각의 솔로 만들어진 거품('래더'라고 부름)은 제각기 다른 느낌을 줍니다.
또한, 어떤 비누는 멘솔이 강하게 들어 있어, 면도부위를 화하게 하는 비누도 있고, 부드러운 버터와 같이 피부를 부드럽게 도포해주는 비누도 있습니다.
이 거품들은 한번 만들면 면도에만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들어진 거품은 면도를 하고 거의 남는데 이것을 저는 세안하는데 사용합니다. 면도솔로 세안을 하면 모공사이사이의 노폐물이 개운하게 빠지기 때문이지요. 어젯밤 마누라에게 "마누라 내 얼굴 한번 만져봐." "어머 얼굴이 왜 이래, 마스크팩했어?" "아니 그냥 면도솔로 얼굴 세안한거야." "어머 어머 나도 면도솔로 세안할래. 어머 어머." "그래 저 오소리털 면도솔 마누라가 써봐." 누가보면 면도솔 전도사 같은 대화였습니다.
요즘 매일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의식과 같이 오늘 사용할 면도솔, 면도비누, 면도날, 면도기를 고르고 정성스럽게 거품을 내고 그 거품을 얼굴에 바르고 면도기로 수염을 깎을때, '사가각, 사가각, 사각, 사각' 하는 나만이 들을 수 있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수염이 깎여나가는 그 재미가 너무 좋아 매일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수염을 마치고 세안을 하고, 한참동안 면도날로 자극받았던 피부를 알럼블럭(명반석)으로 문지를때의 상쾌함은 또하나의 클래식 면도의 백미이기도 합니다.
내일 아침의 클래식 면도가 기대됩니다.
PS: 면도 비누의 세계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구입한 비누들은 모두 행복하고, 향기롭고, 풍성한 느낌의 비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클래식 면도 카페에서 "The Four Hoseman, War"라는 면도비누와 에프터 쉐이브를 개인거래했습니다.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메탈그룹 메탈리카의 "The Four Hoseman"을 생각하고 '아 이 비누와 에프터쉐이브는 아주 그냥 화끈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국내에는 이 비누와 에프터쉐이브에 대한 평이 아예존재하지 않아, 구글링으로 검색해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No Happy, No Fruity
2. 시궁창 냄새가 난다. 썩은 자동차 기름과 같은 역한 냄새가 올라온다. 게다가 화약냄새까지 난다.
3. 오늘 아침에 겨우겨우 사용했는데, 오전에 냄새가 다 빠지길 기대한다.
4. 괜히 내가 가장 아끼는 면도솔을 사용했다. 면도솔에 역한 냄새가 베어 이틀이 지났는데 냄새가 안 빠진다.
아직 물건을 받기전이지만 망한 것 같습니다. 에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