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연휴를 보내며

자식 노릇하기

by 칠봉

예전부터 5월은 무척 바쁜 달이었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 등의 대소사가 많아 무척 바삐 지나갔습니다.

물론 5월에는 금전적인 지출도 상대적으로 많은 달이었습니다.

그 5월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더구나 이번 5월은 연휴이기에 처갓집과 본가의 일정 잡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은 처갓집은 5월 4일, 그리고 본가는 5월 5일에 식사를 같이 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5월 4일 일정이 문제였습니다. 요즘 몸이 불편하신 장인어른께서 좋아하시는 광어회와 광어초밥을 사가지고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는데, 문제는 저희 집에서 수지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아니면 연휴를 맞아 모든 사람들이 다 놀러 나온 것인지

가는 곳마다 차들이 꽉꽉 들어차서 어디를 가도 교통정체로 인해 평소에 다니던 시간에 거의 세배정도는 걸려서

가까스로 처갓집에 도착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저를 안쓰러워하시며, 한편으로는 저희가 들고 온 광어회와 광어초밥을 장모님은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습니다.

장인어른도 “김서방 고생했네, 그냥 와도 되는데…”하셨으나, 역시 저희가 준비한 음식에 연신 ”맛있네, 맛있어. “하시면서

맛나게 자셨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도 역시 차들로 꽉꽉 들어차서 막히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속으로 ‘아 차를 길에 버리고 지하철 타고

돌아가고 싶다.‘ ’어서 집에 도착해서 쉬고 싶다.‘라고 되뇌며, 묵묵히 핸들을 움켜쥐었습니다.

옆에 앉아 있는 아내도 연신 제눈치를 살피며. ”서방 많이 힘들지? 좀 쉬었다 갈까? “ “그런데 내일도 일정 있는 거 알지?”

“그래도 내일은 몇 킬로 안된다. 운전하는 거. 하하하.” 넋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대꾸했습니다.

드디어 집에 도착해서는 ”드디어 우리 집이다. 너무 편하다. “ 하며 바로 드러누워 휴식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서방 수고 했어요. 뭐 필요한 거 없어요?” “아니, 그냥 나 좀 쉴래.” 이 정도 운전에 녹초가 되다니, 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가 봅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본가에 가서 어머님을 모시고 동생 가족이 미리 예약한 음식점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같이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날에 비해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정이었죠. 그러나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게다가 아들도 군복무 중이라

참석하지 못하니, 정말 단출하게 식사 모임이 되었습니다. 단 두 사람이 빠졌을 뿐이데… 그 두 사람이 제 삶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

남자들이었습니다. 수시로 보고 싶고, 아쉬워하며 눈시울을 훔치는 유일한 남자들이거든요.

그 두 남자의 빈자리가 아주 컸습니다. 음식도 별로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고요. 식사를 하는 내내 그 두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내년부터는 같이 함께 할 수 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마도 내년에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어버이날 행사를 할 것 같습니다.

‘부모님 살아 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듣던 말이었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렇게 사무치게 후회될지는

‘그때 조금 더 잘해드릴걸.’ ‘그때 그냥 좀 참을걸.’ 등등 후회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실향민이십니다. 그런 분의 아들놈이 학창 시절 데모한답시고 최루탄 냄새 풀풀 풍기며 다닐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아직도 제 뇌리에 생생합니다. “어떻게 나한테서 저런 빨갱이 새끼가 나왔지?” 그리곤 그때를 회상하며 살짝

입가에 미소가 띠어집니다. ‘그때는 우리 아버지도 혈기왕성하셨었는데…’라고 되뇌면서 말이죠.


자식노릇하는 연휴가 이제 저물어갑니다. 아들 녀석은 연휴기간 동안 전화 한번 없고요.

그 섭섭한 아들이 5월 말에 휴가를 나옵니다. 이번 휴가 나오면 같이 할 일들을 여러 개 생각해 두었습니다.

아들은 벌써부터 먹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번 연휴가 아니고 며칠 전에 말이죠. 자식이 먹고 싶다면

먹어야지요. 어떻게든 예약을 하고 편한 시간을 만들어 들어줘야죠.

대신 아들이 휴가 나오면 우선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에 찾아뵐 예정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큰 손주가

이렇게 컸어요. “라고 아버지께 자랑하렵니다.

아버지 많이 보고 싶고 여전히 사랑합니다. 항상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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