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일라 Dec 28. 2023

베란다에서 감 말려봤니? 나의 애완식품

여행기만 기록하다가 남겨보는 일상

어릴 때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늘 곶감이 걸려 있었다. 줄에 엮여 처마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곶감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머릿속에 깊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곶감에 대한 마음이 꿈틀거렸던 건 영화 <리틀포레스트>였다. 영화에서 김태리 배우가 빨간 곶감 걸이에 감을 깎아서 거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니 어릴 때 봤던 줄에 매달린 곶감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빨간 곶감 걸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줄로만 매달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저 기발한 물건만 있다면 곶감을 말려볼 만하겠는데? 하지만 우리 집은 마당과 처마가 없으니 해볼 생각까지는 못하고 그렇게 마음에만 남아있었다.


웜톤의 고장. 구례


본격적으로 곶감 만들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건 구례 여행을 갔을 때였다. 가을에 간 구례는 빨, 주, 노로 가득 차있었다. 빨간 단풍잎, 주황빛 감 열매, 들판에는 노란 벼가 익어가고 풍요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특히 감 나무가 많아서 여기저기 주황색 감이 보였다. 주렁주렁한 감들을 보자, 잊고 지냈던 곶감 말리기에 대한 마음이 떠오르며 실행에 옮기고 싶어졌다. 마당과 처마가 없는 건 똑같으니 곶감 말리기 체험장부터 찾아보았다.

아, 경상북도 상주까지 가야 했다. 우리 집에서 상주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그렇게 방법을 찾다가 베란다에서도 곶감을 말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 베란다에서도 곶감을 말릴 수 있다면 곶감 걸이만 사면 쉽게 해 볼 수 있겠는 걸. 그렇게 베란다에서 곶감을 말려보기로 했다.



도전! 베란다에서 곶감 만들기




1일차.
왼) 3일차.   우) 7일차.  색깔이 점점 검게 변하고 곰팡이가 제대로 생겼다.




시원하게 망했다. 열흘 동안 아침, 저녁으로 감을 살펴보았던 나의 정성이 생각나면서 도전 정신이 더 생겨버렸다. 근성 하면 나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한 번 더 도전한다!


이번에는 더 철저히 준비했다. 우선 날씨부터 확인했다. 감을 깎고 처음 일주일 동안의 통풍이 중요했다. 감을 잘 말리려면 적당히 시원한 바깥공기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비가 안 와야 했고 많이 춥지 않은 기온이어야 했다. 나는 여행 갈 때도 일기예보를 안 보는데 비가 안 오는 일주일을 찾으려고 11월 내내 날씨를 찾아봤다.


드디어 비가 안 오고 아침 기온이 0도 근처, 낮 기온이 영상 10도인 일주일을 찾았다.


일기예보를 보니 감을 깎기 가장 좋은 날은 일요일이었다! 금요일에 영하 7도로 떨어지니 그전에 날이 따뜻할 때 최대한 빨리 감을 깎고 바깥 바람이 통하도록 해야 했다. 사실 감기약 알레르기로 주말 내리 응급실에 가서 주사와 약 처방을 받고 왔어서 감을 깎을 몸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성공하려면 일요일이 최적기였다. 그래서 가려운 몸을 이끌고 감을 깎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곶감 만들기에 진심이었다.


두 번째 도전! 이번에는 제발!




1일차. 실패 없는 곶감을 위해 선풍기를 꺼냈다.


2일차.


왼) 3일차.      오) 5일차.    더디지만 말라가고 있다.


왼) 베란다 뒤가 지저분 하지만 감이 마른 모습이 잘 보여서 올리는 사진. 7일차.
10일차. 이제 감 표면이 군데군데 들어가 있다.


15일차.


3주차. 감 표면이 쏙쏙 들어가 있다. 쭈글쭈글.


37일차. 감이 더 쭈글쭈글해지고 작아졌다.


함박 눈이 왔다. 시간이 벌써 이리 흘렀구나. 겨울이 와야 곶감이 맛있게 익는다더니 진짜 그렇다.


곶감 한 개를 땄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곶감이다.


성공이다! 냉동실로 잘 넣어주었다.




베란다에서 곶감 말리기 성공 비법
1. 통풍이 중요하다 : 처음 날씨와 선풍기

감을 깎고 처음 일주일 간의 통풍이 중요하다. 베란다 바깥 창문을 열고 곶감에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절히 시원한 바깥 공기가 필요한데 평균적으로 아침 기온이 0도 근처, 낮 기온이 영상 10~15도 이며 비가 안 오는 때로 날을 정해야 한다. 감을 깎고 처음 일주일은 베란다 바깥 창문을 계속 열어두었었다.


그리고 선풍기를 꺼냈다. 나는 바람을 맞으면 피부가 아프다고 느껴져서 선풍기를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집주인 내외가 쓰라고 놓고 간 선풍기가 집에 있었지만 한여름에도 쓴 적이 없었다. 그 선풍기를 결국 꺼내서 씻었다. 매우 귀찮았지만 그 정도로 곶감 만들기에 진심이었다. 우리 집 선풍기는 6시간 이후에는 자동으로 꺼졌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꺼진 선풍기를 다시 틀고 곶감의 상태를 살폈다.


처음 곶감을 말릴 때는 선풍기를 꺼내기 귀찮아서 베란다에서 자주 쓰던 제습기를 틀었었다. 그게 바로 곶감이 썩었던 이유다. 제습기도 선풍기와 같은 효과를 줄 거라 생각했는데 제습기를 쓰면 곶감에 곰팡이가 핀다고 한다. 실패를 해보고 그제야 다른 사람의 후기를 찾으며 알았다. 선풍기처럼 바람을 줘야 한다.




2. 적당한 햇빛

처음 곶감을 말릴 때는 빨래 건조대를 따로 피는 것이 귀찮아서 베란다 천장 건조대에 걸어서 말렸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 저층이라 햇빛이 잘 들지 않았고 그마저도 블라인드로 가리고 있었다. 즉, 완벽한 그늘이었다. 처음에 곶감이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다.


곶감이 마르려면 적당한 햇빛이 필요하다고 한다. 해가 너무 없어도 안 되지만 너무 해가 뜨겁거나 날이 더우면 감에서 신맛이 난다고 한다. 참 여간 까다롭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두 번째 곶감을 만들 때에는 빨래 건조대를 펴고 블라인드를 올렸다. 아파트 저층이었기 때문에 감이 햇빛을 오래 받아도 색깔 변화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후기를 보니 햇빛을 많이 받으면 곶감이 거뭇한 색깔로 마르는 것 같다. 맛은 똑같다고 한다.




3. 치트키는 소주

감을 깎아 걸이에 건 다음, 소주를 뿌리면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소주를 감 꼭지 부근에 뿌려주고 감 전체에도 뿌린다. 실패 한 이후 곶감을 만든 각종 후기를 찾으며 겨우 알게 된 정보이다. 찾기 힘들었던 정보 내가 남긴다. 우리 집 베란다처럼 곶감이 쉽게 안 마르는 환경에서는 꼭 뿌려야 한다.




다른 집 후기 사진과 비교해 봤을 때 우리 집 곶감은 마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파트 저층은 햇빛도 약하고 바람도 많이 안 불어서 그런 거 같다. 하지만 성공했다. 이 세 가지 방법만 잘 지키면 베란다에서 곶감을 말릴 수 있다.



37일 동안 아침, 저녁마다 베란다로 가서 곶감이 잘 있는지 곰팡이는 생겼는지 살펴봤다. 감의 위치를 한 번씩 바꿔주면서 바람을 고루 쐬게 해 주고 너무 추우면 문을 닫아주었다. 참 지극 정성이었다. 이 정도면 애완 식품이다. 귀찮아서 식물도 안 키우는데 식품은 키웠다. 다른 집에 비해 우리 집 애들은 잘 안 마르고 있는 거 같아 애가 타기도 했는데 이렇게 곶감이 되었다. 참 대견하다. 잠깐! 이게 맞는 감정인가. 애완식품이니까 이 마음이 가능한 거 같기도 하다.

 

 “여러분, 저희 곶감이들이 진짜 곶감이 되었습니다!”

 "너, 애완식품인데 먹을 수 있겠니?"


아! 성공은 했는데 못 먹을 거 같아요. 어떡하죠?




작가의 이전글 후쿠오카 소도시 히타와 우키하를 가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