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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l 03. 2023

깨끗하게

절교라고 하든 단교라고 하든, 둘 다 교제 또는 관계를 끊는다는 말이다. 사람살이를 하다 보면 그렇게 할 때가 간혹 있다. 크게 배신을 당했거나 실망을 느꼈을 경우이다.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 그런 단절을 감행하게 된다.


그런데 단절을 감행한 사람은 대체로 ‘독하다’거나 ‘모질다’는 따위의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단절을 감행한 사람은 심각하고도 절박한 결단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상대가 감추려 하거나 말하고 싶지 않 상처 혹은 치부 또는 약점 같은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마치 ‘모른 척’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뱉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더 이상 둘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짓을 자행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그런 마음을 숨기고 혹은 상대를 적절하게 이용해 가면서 관계를 유지해 갈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단절을 감행한 사람보다 훨씬 무섭거나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크다.


‘깨끗하게’라는 말은 마음에 구구함이나 연연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할 때 흔히 쓴다. 단교나 절교를 넘어서는 비열한 언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면서도 아닌 척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보다는 “깨끗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게 나을 것이다.


덧. 김수영이 1966년 스코틀랜드 에딘바라에 유학중이던 “나이어린 친구” 황동규에게서 받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는 이렇다.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 실행하지 않는 욕망을 키우느니 요람에 든 아기를 살해하는 편이 낫다”는 뜻의 이 구절을 김수영은 “상대방이 원수같이 보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善의 入口에 와있는 줄 알아라”라고 의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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