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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Sep 14. 2023

맹신자들


"광신자는 언제까지나 불완전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는 스스로에게 거부당한 자신만으로는 자신감을 일으키지 못하며 무엇이 되었건 오로지 자신이 신봉하게 된 그 무언가, 그 기둥에 열정적으로 매달릴 때에만 자신감을 얻는다.


이렇게 열렬히 매달리는 심리가 그의 맹목적 헌신과 믿음의 본질이며, 그는 그 안에서 모든 힘과 미덕의 원천을 만난다. 그 한결같은 헌신은 자기 목숨까지도 건다는 뜻이지만, 그가 보는 자신은 그 숭고한 대의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의 자신감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의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그의 행위에서 나온다. 광신자는 사실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어떤 대의를 신봉하는 것은 그것이 신성하고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자기가 열정적으로 매달릴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로 광신자는 무언가 열정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까닭에 자신이 받아들이는 모든 대의가 전부 숭고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의 논리나 도덕의식을 자극해봐야 광신자는 그 대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갈등 없이 갑자기 열광적으로 다른 대의로 갈아타기도 한다. 그에게 설득이란 없으며, 가능한 것은 오로지 전향 혹은 개종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신봉하는 대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느냐이다."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만큼 오늘 이 땅의 정치의식, 곧 '진영과 빠'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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