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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17. 2024

논점일탈의 오류


- 로마인: 당신들은 하느님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도대체 그 하느님은 어디 있단 말이오?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준다면 나도 하느님을 믿겠소.


- 랍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시오.


- 로마인: 바보 같은 소리 마시오! 어떻게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단 말이오.


- 랍비: 당신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인 태양조차 똑바로 볼 수가 없다면, 어떻게 위대하신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가 있겠소.


로마인과 랍비의 이 대화는 《탈무드》에 나온다. 랍비의 말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하느님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달라는 로마인의 물음에 태양도 제대로 못 보면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느냐고 답한 것은 논점일탈이다. ‘하느님이 어디에 있냐는 것’과 ‘하느님을 볼 수 있냐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다. ‘태양을 똑바로 볼 수 있는가’와 ‘하느님을 볼 수 있는가’도 역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음과 같은 주장 혹은 논법도 마찬가지다. “고전학자의 80%는 안경을 쓰고 있다. 그러므로 고전학자가 되려면 안경을 쓰는 것이 좋다.” 이것이 엉터리임은 ‘고전학자가 되는 것’과 ‘안경을 쓴다는 것’ 사이의 필연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이 논점일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건 대개 확증편향 탓이기도 한데, 건 진영론이 낳은 심각한 폐해이다. 후세는 2000년 대 초 한국의 현실을 '진영론으로 황폐화된 지성'으로 특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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