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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19. 2024

억측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역사서에서 궐문(闕文)을 볼 수 있다. 말을 가지고 있는 자는 다른 사람이 타도록 빌려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다.”(子曰, 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


『논어』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공자는 많이 듣고 의심이 되는 부분은 그대로 남겨둘 것을 주장했다. 즉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그냥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궐문’을 남겨둔다는 것은 후세 사람이 올바로 보충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것은 마치 자기가 말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타도록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고고학 발굴에서 현 단계의 수준에 비추어 발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훗날을 기약하고 다시 덮어둔다고 한다.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 망쳐버린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박정희가 유물을 빨리 보고 싶다고 하자 충성스런 고고학자들이 하룻밤에 끝내버린 1971년의 무령왕릉 발굴이다. 청와대로 유물을 공수해 가자 박통은 감격에 겨워 무령왕릉비의 금팔찌를 ‘진짜 금이냐’며 휘었다 펴보거느 깨물어 보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좀 다른 문맥이기는 하지만, 비트겐쉬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의 마지막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증명될 수 없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구태여 증명하려 하여 무가치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오규 소라이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원래 이 문장은 ‘지(之)’ 자 아래와 ‘야(也)’ 자 위에 빠진 글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궐문(闕文)’이라는 두 글자를 주석으로 달아놓았는데, 마침내 원문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후세의 사람들이 이것을 살피지 못하고 해석을 한 것은 모두 잘못이다.” 오규 소라이의 말이 맞는다면, 여러 학자가 참으로 어이없는 견강부회들을 한 것이다.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뒷구절의 말 얘기는 앞의 얘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학인이라면 삼가지 않을 수 없다. 단견과 억측으로 장사를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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