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어느 시에 “단봉패진한강우(短蓬敗盡寒江雨)”라는 말이 보인다. 모씨의 번역을 보니, “짧은 뜸도 다 떨어져 강 비도 차갑다”고 풀었다. 갑자기 뜸이 나와 어리둥절하다.
김시습은 세상사에 환멸을 느껴 탕유(宕遊), 곧 방랑길을 떠나는데, 그 첫 번째가 관서지방이다. 그때 그의 나이 22살이다. 다녀와 남긴 것이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이다. 위 시는 거기에 나오는 「어부(漁父)」라는 시다. 그의 초기시다. 이 시는 어느 어촌에 들러 세금으로 고통 받는 어부의 삶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어부는 가중되는 세금을 견디지 못해 섬으로 흘러들어왔는데, 거기서도 세금 재촉에 시달리다가 집을 팔아 작은 배를 사서 겨우 해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다음 시구에서 그런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去歲官家漁稅討 / 지난 해 관가에서 어세(漁稅)를 뺏어가
挈家遠入碧海島 / 가족 끌고 푸른 바다 멀리 섬으로 들어왔는데
今年里胥來催科 / 금년에는 마을 아전 와서 세금 재촉해
賣家買艇依寒藻 / 집 팔아 배를 사 찬 해초에 의지해 사네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보듯이, 그 작은 배마저 부서지고 깨져버렸다(短蓬敗盡). 이 시는 그런 서글픔을 노래하고 있다(寒江雨).
요컨대 “봉(篷)” 자에는 뜸이라는 뜻도 있지만, 대나무로 대충 얽어 만든 작은 배라는 의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