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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23. 2024

냉면 이야기 몇 개


서울에서 냉면이 크게 유행하게 된 데에는 MSG인 "가루 양념" 아지노모도(美の素)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해방 후 한참 지나 '미소'니 '미원'이니 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냥 아지노모도라 불렀다.


예전에는 냉면집임을 나타내는 표시는 저런 먼지털이 같은 것이었다. 냉면은 배달도 됐다. "냉면 배달은 기다란 목판에 담아서 어깨에 메고 자전거로 날랐다. 배달꾼들은 몸이 크고 툰튼한 장정이었다. 목판의 길이가 150센티미터인데, 한 목판에 스무 그릇이 놓였다.....커다란 사기 대접에 고깔 모양의 함석 뚜껑을 덮었다. 커다란 국물 주전자는 짐받이에 실었다."(어효선, <내가 자란 서울>, 1990)


는 냉면은 배달 시켜먹어보지 못했고, 여름이면 청수냉면(당면처럼 바짝 마른 건면)을 사다가 겨자향 나는 기름을 떨어뜨려 먹었다. 간혹 얼음집에서 얼음을 사와 바늘로 쪼개 넣어 먹기도 했었다.


'평양냉면'이라는 말은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이 1855년에 펴낸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 처음 보았다. "소식의 시에 ‘달걀 얹은 푸른 그릇 안 홰나무순 국수’라 하였으니, 지금의 평양냉면과 비슷하다.”(坡詩靑浮卵盌傀芽麵, 似今平壤冷麪)


제대로 된 평냉이 눈에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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