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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an 29. 2024

불가살이


조선 후기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이런 말이 전한다. “송도 말년에 어떤 것이 쇠를 다 먹어 치워서 죽이려 했으나 죽일 수 없어서 불가살(不可殺)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다음 세 이야기는 조금씩 다른 변이를 보인다.


(1) 조선 초에 불교 탄압 시절 피해 다니던 중이 밥풀을 뭉쳐 불가살이(不可殺伊)를 만들었다. 이것이 쇠붙이를 모조리 먹어치웠지만 죽일 수 없었다. 어느 승려가 가져온 부적으로 쇠붙이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이 일이 있은 후 더 이상 불교를 탄압하지 않았다.


(2) 고려 말 가난한 한 과부의 몸에 딱정벌레가 기어다녔다. 어느 날 벌레는 과부의 바늘을 삼켰다. 그 이후 집안의 모든 쇠붙이를 먹어치운 벌레는 개만큼 커졌다. 집을 나간 벌레가 온 나라의 쇠붙이를 먹어치우자 나라에서는 죽이려고 했지만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벌레를 불가살이라 불렀다.


(3) 고려 말 요승 신돈은 양가 여인들과 음행을 하여 많은 자식을 낳는다. 어느 여인이 신돈의 죄상을 폭로함으로써 신돈은 잡혀 죽고 불교 탄압이 시작된다. 나라에서는 승려들을 잡아들이니 중들은 모두 도망쳐 숨는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밥풀을 뭉쳐 만든 것이 쇠를 먹는 동물이 되어, 승려 사냥을 일삼던 폭정을 그치게 한다. 그래서 이 식철(食鐵) 동물은 불교를 살려냈다고 해서 불가(佛家)살이라 불렀다.


이 외에도 중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혼재나 먹던 쇠붙이를 모두 썯아내고 사라졌다든가, 무당의 참언이 있은 후 고려가 망했는데, 그와 동시에 극성을 부리던 불가살이도 함께 사라졌다는 이야기들이 더 전한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오면서 이 불가살이는 경복궁 아미산 굴뚝에 십장생과 함께 사용되어 길상을 나타내거나 베갯모에 장식해서 악몽을 퇴치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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