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번역에 대하여 4

by 진경환


“처마 끝 산마루의 달이 붉는 석가래를 지나갈 때, 베갯머리 시내에 비친 구름이 푸른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양치질하네"


어느 책에서 김극기의 시구 "簷端嶺月流朱栱, 枕上溪雲漱碧櫳”를 번역한 것이다. 책장을 더 넘기기가 싫어진다. 우선 “석가래”라는 말은 없다. “서까래”라고 해야 한다. 다음 도대체 저 말이 무슨 뜻인가? 아무리 시적 허용이 용인된다 해도 말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베갯머리 시내에 비친 구름이 푸른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양치질하네”를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수(漱)”는 물론 “양치질하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말이 있다.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이다. 남에게 지기 싫어서 억지 고집을 부리는 상황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우선 “벽농(碧櫳)”을 “푸른나무 그림자”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시로 쓴 연행록인 『계산기정(薊山紀程)』(19세기 초)에 “앞 사람들 올라왔던 자리라, 시들이 푸른 창틀에 가득하구나(前輩登臨蹟, 詩篇滿碧櫳)”라는 시구가 보인다. 윤증(尹拯; 1629~1714)도 “두 쪽 창문 활짝 열고 기둥에 기댔더니, 하늘에는 붉은 구름 산은 해를 머금었네(雙排碧櫳倚樓柱, 絳雲在霄山含日)”라는 시구를 남겼다. 이로 보면, “벽농”은 요즘 말로 무엇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창틀이나 창문 같은 것으로 보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한다.


다음 “계운(溪雲)”이다. 보통 “시냇구름”이라고들 옮기지만, 다음 장유(張維)의 시구 “산 그림자 마루 밖에 드리워지고, 시냇가 운무 방에까지 들어오네(嶽影當軒外, 溪雲入戶中)”에서 보듯이, 시냇가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枕上溪雲漱碧櫳”에서 “수(漱)”는 양치질한다는 뜻이 아니라 흘러닥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그러면 이 구절은 대개 ‘창문을 타고 안개가 머리맡까지 흘러 넘어오네’ 정도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처마 끝 산마루의 달이 붉는 석가래를 지나갈 때, 베갯머리 시내에 비친 구름이 푸른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양치질하네”는 “처마 끝 산마루 걸린 달이 서까래를 지나자, 밤안개는 창을 타고 배갯머리 흘러드네”로 하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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